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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서감상문] 2019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1)_그때 그 순간으로 데려다 주는 마법같은 이야기들

by 쭈야해피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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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보내기 전에 나는 주로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총 3개로 생각하곤 했는데, 2019년을 보낸 이후로 부터는 그 해를 기준으로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해에는 이 책을 사두고도, 전혀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아주 많이 피폐하고 아주 많이 낙심하고 아주 많이... 암울한 상태였으므로, 젊은 작가상을 받은 작품들은 나의 상태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21년이 된 올해에 읽었다. 그런데 19년과 마찬가지로 21년에도 나는 아주 많이 피폐하고, 낙심한 상태이다.

19년과 21년이 다른 점은 19년을 겪어 보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21년도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외에는 거의 동일하다. 두번의 죽음이 우리 가족들의 삶을 할퀴고 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한다. 영원한 이별은 가슴에 묻어두고...

박상영 작가의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pg. 15
퇴사 의사를 밝히는 내게 차장이 말했다.
-우리 회사보다 더 좋은 곳에 붙은 건가?
그게 아니라 홀어머니가 암에 걸려서요, 간병할 사람이 없어서 때려치웁니다,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엄마는 남들에게 굳이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될 것가지 비밀로 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남세스럽다'는 것이었다. 대찬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언제나 묘한 포인트에서 수치심을 느끼곤 하는 엄마는, 자신의 병을 몹시 부끄러워했다.

젊은 작가상 수상작에는 역시나 묘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관계와 사건의 설정이 들어있다. 때로는 너무 사실적이고, 때로는 너무 찌질한 것 같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임에 분명한 그런 내용들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렇게 무심하게 무뚝뚝 썰듯이 툭하고 던져진다. 그래서 쉽사리 아주 좋아. 마음에 들어~라고 평할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년 20년 21년 차례 차례 읽게 만드는. 그런 작품들이 실려있어서 나는 이 작품집을 꼭 읽는다. 이렇게 2년 지나서도 모두 다... 꼼꼼히 읽고, 평론가의 문장들과 작가노트까지 세밀히 읽는다.

2016년 12월 말일까지 회사를 다니던 나는 퇴사 의사를 밝히고,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17년과 18년까지 평창에 머무르면서 글을 써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다. 조금 더 다니다가 그만둘까도 여러차례 고민했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런데, 17년 1월부터 나는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 아니다. 그때는 아무일도 없을 거라고, 나도 열심히 언니를 도와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가족 구성원이 되어야겠다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질 거라고. 작디작은 꼬마에게 그런 일은 말도 안된다고.. 그래서 17년 봄에 부랴부랴 서울로 다시 이사를 왔다.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pg. 39
-안타까운 얘기네요.
-사실은 나도 그래서 안정적인 일 하는 거예요. 예술이, 신념이 인간을 망치는 걸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
예술이 도대체 뭐 얼마나 대단하게 인간을 망쳐놨길래. 그리고 스피노자는 예술이 아니라 철학을 한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가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하나도 안 궁금하고 안 중요해 보이는 얘기를 줄줄 이어나갔고 나는 그것을 귀기울여 듣는 척했다. 그 와중에도 침대맡에서 공기청정기는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말했다.
-여기 공기는 깨끗해서 다행이네요.

pg. 65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고 잔신경질이 늘었다. 그에게서 인생의 힘든 지점을 지나는 사람 특유의 뒤틀린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라고 해서 뭐 다를 건 없었다. 만성비염을 얻었으며, 총 마흔여덟 개의 기업으로부터 죄송합니다만, 으로 시작되는 거절의 메시지를 받았다. 병원의 보호자 침대에서 서너 시간씩 쪽잠을 자고,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고 콧물을 훌쩍이며 또다시 내가 아닌 나를 지어내며 인생을 견디고 있었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십대의 젊음이 무색하게 매일 지쳐만 갔다.

pg. 82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가.
내게 있어서 사랑은 한껏 달아올라 제어할 수 없이 사로잡혔다가 비로소 대상에서 벗어났을 때 가장 추악하게 변질되어버리고야마는 찰나의 상태에 불과했다. 그 불편한 진실을 나는 중환자실과 병실을 오가며 깨달았다.

김희선 작가의 [공의 기원]
pg. 120
가죽 축구공을 공급할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은, 지도제작이라는 미명하에 인천 앞바다를 어슬렁거리던 '플라잉피시'란 이름의 군함에까지 실리게 되었으며 결국 제물포 인근에 살던 한 소년에게 전달되어 그의 운명을 바꿔 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pg. 130
하지만 남자는 완벽한 축구공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랬듯, 그에게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더이상 바닷가에서 먹고살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한때 소년이었던 남자는 하와이로 가는 이민선에 몸을 실었다. 대부분은 가족을 모두 이끌고 떠낫지만 그는 혼자 배에 타고 있었다. 아매가 만삭이라 데리고 갈 수가 없어요. 이번엔 낯설고 척박한 땅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부두에 나와 있던 앤더슨에게,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 일단 거기 가면 농장에서 열심히 일할 생각입니다. 돈을 벌어서 집도 짓고 땅도 사면 그때 아내와 아이를 데려가야죠. 그는 정말로 자신의 꿈이 실현될 거라고 믿는 듯 활짝 웃었다.


공의 기원을 읽으면서는 김영하 작가님의 [검은 꽃]이 계속 생각났다. 다시 주요 구절을 옮겨 적으면서도 또 생각나서, 예전에 읽고 남겼던 독서감상문을 링크로 걸어본다. 정말 좋은 소설이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https://hearthouse.tistory.com/447

조선 최초 멕시코 이민자들_검은 꽃

단숨에 읽어 놓고, 감상문을 쓰지 않은걸 전혀 몰랐다. 김영하 작가님 소설은 그렇게 늘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어 놓고도 왜 감상문을 남겨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지..반성하고 반성한다. 2003년

hearthouse.tistory.com


백수린 작가의 [시간의 궤적]
pg. 159-160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모두가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에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다가는 결국 낙오자가 될 거라고 말하지 않은 최초의 한국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언니가 좋았다.

pg. 161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의 밤을 기억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습기였다. 세 달 남짓한 여름밤을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곧이라도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대기가 얇고 부드러운 껍질처럼 우리를 감쌌고, 나는 그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꼈다.

pg. 166
돌이켜보면 브리스와 내가 결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언니였던 것 같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미래를 걱정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을 한심해하고 있던 내게 어느 날 언니가 "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만큼 용기를 내본 적 있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았다면, 어느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어디선가 베트남 국수 냄새가 풍기던 고록에서 다른 것은 잘 몰라도 브리스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만큼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테니까.

pg. 180
우리가 식당 밖으로 나왔을 때 거리에는 장대비가 퍼붓고 있었다. 어쩌면 좋을지 망설이는 사이, 언니가 먼저 우산을 펼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우산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 비였다. 언니는 이내 우산을 접더니 비를 쫄딱 맞은 채 나에게 빗속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우리는 폭우 속을 달렸다. 웃음을 터뜨리면서. 머지않아 거짓말같이 비가 그치고 해가 날 거라는 사실엔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처럼.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 싶어진다.


2009년 9월 나는 미국 샌디에고 공항에 도착했다. 그때의 나도 [시간의 궤적]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서른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없이 낯선 세계에 들어설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를, 샌디에고의 공기를, 소중했고 보고 싶고 고마운 사람들을 단숨에 떠올리게 만들어 준 소설이었다.

인연은 어느 순간 그 힘을 다써버린 후에, 마침내 끊어져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날 문득 가슴 뭉클하게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는 한다. 그 기억의 순간에서 나는 다시금 그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다. 현실에서는 닿지 않는 말이고 생각이지만, 내 머리속에서 우리의 만남은 다시 따뜻하게 되살아난다.
나를 그 순간으로 다시 데려다준 고마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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