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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조선 최초 멕시코 이민자들_검은 꽃

by 쭈야해피 2017.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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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 놓고, 감상문을 쓰지 않은걸 전혀 몰랐다. 

김영하 작가님 소설은 그렇게 늘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어 놓고도 왜 감상문을 남겨 놓은 것이 하나도 없는지..반성하고 반성한다.


2003년에 1쇄가 출판된 10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2017년 3월에 읽어도 전혀 손색없는 멋진 이야기이다. 조선 최초 멕시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뤘고, 나라를 잃은 백성들, 나라가 찾지 않은 국민들, 나라가 절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도돌이표 처럼 돌고 돌아 여전히 반복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책을 읽은지 2주는 족히 되었는데, 그 장면 하나 만큼은 선 하다. 1903년 4월 4일, 일포드 호는 1033명의 조선인을 태우고 제물포항에서 외교관은 커녕, 교민도 한 명 없는 미지의 나라 멕시코로 향해 출항하였다. 두달 동안의 긴 기다림 끝에(어린아이의 병과 여권문제, 영국공관의 검사) 배가 드디어 닷을 올리고 기적을 울리며 출발했을 때 1033명의 조선인은 반상과 남녀, 노소와 장청의 구별 없이 하나 같이 밝은 얼굴이었다. 


새로운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그 순간은 시대와 공간을 막론하고 모든 이들에게 설레이는 감정을 주는 것임에 분명하다. 실망은 기대의 자리를 내어준 인간의 잘못이라 하지만, 희망의 자리만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삶의 대한 유일한 열의일 수도 있다. 


제물포항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3가지의 문제, 병, 여권(주권), 처우(외교관의 역할)은 여지없이 1033명의 조선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였다. 어느 나라 어느 환경 어느 누구라도 예외없이 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몸과 마음, 정신 혹은 유전자 조차도 알알이 바뀔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살아남은 조선인들은 멕시코든 조선이든 상관없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일하고 돈을 모으고 내일을 기대하면서 버텼다. 그리고 돈을 벌어 조선에 돌아가 땅 한떼기 사서 농사를 짓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을 꾸리려고 했던 그 누구 한 명도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과 중국에서는 일본과 중국을 위한 전쟁에 참전했던 조선 백성들이, 멕시코에서는 또 그들의 혁명에 동원되어 혁명전쟁에 참전했다. 자신의 조국을 위해 총칼을 들 수 있었다면 이들의 삶이 바뀌었을까? 남의 나라 싸움에서 돈을 벌어 땅을 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게 지금 내가 사는 이곳도 내 한 몸, 내 가족이 누울 수 있는 그 자리 하나 마련하기 위해 모두들 일터에 나가 돈을 벌고 대출금을 갚아가며 집을 지키려고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많이 다르지 않다. 100년 전 나라가 망하고 지구 반대편 어딘지도 모를 낯선 나라의 노예로 팔려가던 시절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면 잘못된 판단이겠지만, 기분은 느낌만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가장 나약한 나라의 가장 나약한 백성들의 최후는 어떠리라 예상하는가? 인간이 밑바닥 욕망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귀한 자도 저속한 자도 결국은 오늘의 배고픔과 내일의 권력에 기대어 당장의 욕망을 움켜잡을 뿐이다. 


땅 한 덩이만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그건 자족할 수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빈 말일 뿐이다. 자족하라고 요구하는 욕심만은 자의 공허한 명령일 뿐일지도... 



pg 94

너같이 잔 놈도 장가를 갔는데 내가 못 가겠느냐. 그럼 돈을 벌어 어디에 쓰겠느냐? 서기중은 아내와 자식이 있는 서쪽을 잠시 힐끗거리더니 수줍은 듯 조용히 말했다. 논을 사야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갑자기 가라앉히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어라, 귀신 지난간다. 조장윤이 웃겨 보았지만 홍소는 터지지 않았다. 땅이 있었다면 아마 아무도 이 배에 오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땅이 없었기에 군인이 되었고 당이 없었기에 장가를 가지 못했고 땅이 없었기에 돌아갈 곳을 잃고 그 지독한 병영응로 기어들어갔던 것이다. 진위대 시절 생각 나는군. 지나고 보니 그때가 좋았어. 김석철이 꿈꾸듯 말했다. 그 시절이 뭐 좋았다고 그래, 힘만 들었지.      


pg 96

저기, 나는 안 돌아가려네. 모두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배에 올라탄 이래로 그같은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그까짓 나라,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돌아가겠는가. 위로는 되놈에, 로스케 등쌀에, 아래로는 왜놈들 군홧발에 이리 맞고 저리 굽신, 제 나라 백성들한텐 동지섣달 찬서리마냥 모질고 남의 나라 군대엔 오뉴월 개처럼 비실비실, 밸도 없고 줏대도 없는 그놈의 나라엔, 나는 결코 안 돌아가려네. 주리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여기에서 버텨보려네. 땅도 사고, 그는 침인지 눈물인지를 꿀꺽 목구멍으로 넘기곤 말을 이었다. 물론 장가도 가야지. 새끼도 낳고.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어찌 되었는지를 잘 아는 나머지 세 명의 제대 군인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김석철만이, 그대로 가야지, 조상들이 계신데, 라며 낮게 웅얼거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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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105

평생 지평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선인들에게 이 벌판의 황막함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산과 산 사이에서 태어나 산을 바라보고 자랐으며 산등성이로 지는 해를 보고 잠자리에 들었음을 깨달았다. 넘어갈 아리랑고개가 없는 끝없는 평원은 그야말로 낯선 풍경이어서 사람들은 딱히 바닥이 딱딱해서라기보다 지평선이 주는 막막함과 공허로 뒤척였다. 멕시코 만에서 시작된 바람은 멈추지 않고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이민자들의 천막을 통과해 유카타 반도의 내륙에서 먼지를 불어올렸다.


pg 218

그는 이미 농장주처럼 사고하고 양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의 행동거지는 정말 조선의 양반들을 닮아 있었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명령하기는 좋아하며, 자기보다 약한 자들을 때리고 멸시하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그러나 힘센 자에겐 지체 없이 고개를 숙였다. 거들먹거리며 종로를 활보하고 기생집을 들락거리던 양반들이야말로 그가 보고 배운 거의 유일한 인생 모델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pg 313

그는 눈을 감았다. 어서, 어서! 그는 애원했다. 결말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쾅,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 평생 처음 느끼는 편안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고통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길고 지루한 여행이 이제야 끝났다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하늘 높이 떠오른 그의 영혼이 대성당 앞 광장의 난장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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