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서감상문]완전한 행복_이기적인 인간의 끝판왕

by 쭈야해피 2021. 10. 27.
728x90
반응형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소름 끼치는 이야기. 묘하게 한쪽 눈꺼풀이 비틀리게 만드는 묘사. '혹시?' 하며 누군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순간. '어이쿠.. 정말로?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

정유정 작가님의 [완전한 행복]은 누구라도 읽는 순간 '고유정 사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반에 100페이지 가량을 읽으면서는 곤혹스러웠다. 정유정 작가님의 이야기는 하루나 이틀 만에 후루루루 읽어버려야 제맛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라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상상 속에 펼쳐지는 묘한 쾌감. 실감 나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의 경계 안에 있다는 약속.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야!?' 그걸 떠올리는 순간 심사가 뒤틀리는 것이다. '어째서? 왜?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일까?' 이런 쓸데없는 추론과 의심들이 딸려 나온다. 책을 읽어야 하는데. 계속 계속 줄줄줄...

519페이지 중에 초반 1~2장, 120페이지가량은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사건이 떠올랐기도 하거니와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주변인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주인공의 마음과 시선에서 보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어디선가 인터뷰를 본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다. 정작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들(그들도 주인공이다)에 의해 이야기를 끌어 가고, 시선을 전환해야 하다 보니까 초반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3장부터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되면서는 역시나 초과몰입하게 되는 전개였다.

나의 경우는 딸아이와 이모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과몰입하는 경우가 많았고, 현남편과 과거 이야기에는 조금 흥미가 덜했다. 하지만, 어쨌든 130페이지 이후부터 5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후루루룩 읽게 만들었다.

pg. 12

"엄마가 비밀이 무슨 뜻이라고 했지?"
엄마가 복습을 시키듯 물었다.
지유는 대답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요."
"그리고?"
'그리고?'는 이런 뜻이다. 답이 완전하지 않아. 지유는 나머지를 채웠다.
"말하면 벌을 받아요."


초반부터 아이의 시선이 얼마나 위태롭게 보이는지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은 새로운 개념과 정보들의 조합이 너무 쉽게 사용되면서 오히려 더 그 원래의 뜻이나 의미가 퇴색되거나 혼돈되고는 한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 또는 가스등 효과(瓦斯燈效果)는 심리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출처 위키백과)

흔히들 연인관계나 직장 내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의심하곤 하는데, 사실 성인에게는 쉽게 발생하기 힘든 개념이다.(성인에게도 서서히 가스라이팅을 할 수 있지만, 성인은 의심할 수 있고, 주위에 물어볼 수 있고, 거부하려고 시도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자신의 정신과 온 세상을 엄마로부터 지배당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그런 존재다.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가 이해하는 세상, 아이가 앞으로 꿈꾸는 미래조차도 엄마로부터 시작되고 엄마로부터 끝이 나기 마련이다.. 소설 속의 아이에게 엄마는 정말이지 신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아빠도 있고, 이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유치원 선생님도 있는데? ... 아이는 엄마로부터 버림받을까 봐, 다시는 엄마를 보지 못할까 봐... ㅠㅠ 말과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살얼음 위를 걷듯이 통제당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연민에 빠지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죄를 아무렇지 않게 합리화하기 쉽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의 경우, 자기연민에도 빠지기가 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의해 사회적 상식이라는 선을 넘기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래서 자기연민에 빠지더라도 어느 정도의 죄의 범위를 구분하고,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를 경우 양심이라는 것이 발동하게 마련이다. 이기적인 인간들이 자신만을 생각해서 일을 처리할 경우,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변명이라는 것을 하는데, 이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왜냐하면 양심과 상식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해받고 싶으니까... 내 잘못이 그렇게 크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것은 아니라고... 모두 다 나 말고, 바로 저 다른 사람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타인이 인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 말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애초에 다른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은 모두 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뜻이 맞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상식인 것이다. 세상의 기준이 교육이 올바른 게 아니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그 일과 방식이 옳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그냥 전혀 다른 종이다.

정유정 작가님의 전작 소설 중에 [종의 기원]에서는 사이코패스. 이번 [완전한 행복]에는 소시오패스. 그런 종류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보통 사람들은 살면서 소시오패스를 무조건 만난다고 한다. 100명 중에 4명은 소시오패스라고 하는데,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에는 15%가 증가했다라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현대사회는 충분히 더 다채로운 정신질환이 등장하고 있으니, 가능성이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여튼, 소설 속 등장인물은 충분히 현실 속 사건의 인물과 유사하며, 현실 속 사건의 인물은 충분히 주위에 있을 법도 하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한다. 물론 혼자서 답하기 어려울 수 있고, 그냥 의심이나 고민이 될 수 있으므로, 좋은 친구들을 사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읽으면서 계속 그런 생각을 일으켰다. '내 주위에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래..' 그리고 이 정도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결론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생각의 끄트머리에는 감사로 종결되는 나의 망상의 나래들... ㅎㅎ

책을 읽으면 그런 저런 사건들과 사람들과 관계들과... 지나가버린 옛일들이 소소소 돋아났다가, 스르륵 잠겨 든다. 그런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서 참 좋다. 그리고 [완전한 행복]은 다 읽은 지 2주가 되도록 쉽게 독서감상문을 쓸 수 없었다. 아마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의 존재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때문인 것 같다. 나와 당신의 주위에 함께 살아가는 그들을...


pg. 36
"아빠, 안녕하세요."
지유는 안기는 대신 인사를 택했다. 두 손을 모으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보통은 칭찬받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팔을 떨어뜨리는 아빠의 눈이 물기를 머금고 붉어졌다. 미소를 띠고 있던 입술은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아빠가 다시 입을 여는 데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안녕, 아가."

pg. 111
아내가 그의 집에 와 있던 주말이었다. 만난 지 1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서로 알 만큼 알았다고, 그는 판단했다. 과연 싸우는 날이 올까 싶을 만큼 모든 면에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서로 운명의 상대라 여긴다고 믿었다. 아내 역시 기쁜 얼굴로 예스,라고 할 줄 알았다.

pg. 115
그는 아내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유를 입양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노아를 데려오지 못하는 게 싫었다. 아내의 주장이 합당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재혼이 숨겨야 할 비밀은 아니지 않은가. 보편적인 가정은 아닐지 모르나, 아이의 성을 바꾸거나 아이들을 직접 기르지 못할 결함은 아니었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더보기

pg. 124

노아였다. 펭수 배에 얼굴을 묻고 엎드린 노아. 사지를 늘어뜨린 채 움직이지 않는 노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노아, 숨 쉬지 않는 노아, 맥이 뛰지 않는 노아, 몸을 흔들자 머리를 옆으로 툭 떨어뜨리는 노아. 세상이 훅,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은 까맣게 암전됐다. ... ...

pg. 152

그나마 어머니는 운이 좋았다. 당신과 똑같은 몸을 가진 이가 세상에 하나 더 있었으니까. 그 사람이 기꺼이 자기 신장 하나를 내주겠다고 나섰으니까. 수술 전 준비 과정은 복잡하고도 길었다.

pg. 154

그때만 해도 겨울이 오면 유나가 돌아올 줄 알았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때만 기다리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시간은 그녀에게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 대신 원치 않은 진실을 가르쳤다. 내일은 바라는 방향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 간절히 원한다 하여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유나는 겨울이 가고 봄이 또 가도록 돌아오지 못했다.

pg. 165

잠이 오지 않았다. 적어도 아이를 혼자 책임지게 된 오늘만큼은. 그녀는 아이 곁에 모로 누웠다. 보일 듯 말 듯 흔들리는 아이의 속눈썹을 가만히 바라봤다. 3년씩 함께 살면서도 이렇듯 가까이에서, 이토록 열심히 아이를 관찰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처럼 답답한 심정으로 바라본 것도.

pg. 189

"밥이 차니까, 이거 마시면서 먹어."

봄방학 내내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픽업트럭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도시락은 그녀 안에서 꽃이 되었다. 그땐 그걸 몰랐다. 기나긴 삶의 겨울이 지나고 눈보라가 멈춘 후에야 그것이 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치거나 죽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도.

pg. 356

사고소식

pg. 395

"누구랑?"

진우랑 마셨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 시비를 걸어달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동료 교사랑 마셨다고 할까? 아니면 대학 동기랑? 길 가다 우연히 만난 불알친구? 과연 믿어줄까?


pg. 513
알고 있었다. 늪이 깊지 않다는 것을, 지유에게 들어 그도 알고 있었다. 버둥거려선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숨을 참고, 힘을 빼고,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안다'와 '한다'가 연동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죽음이 엄습해오는 그 순간엔 본능이 최전선에 나섰다.

작가의 말 중에서
고백건대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주 야금야금 길이 들었고, 관계에서 벗어났을 땐 이미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나르시시스트가 내게 언제고 한 번은 다루고 싶은 문제적 인물이 된 이유다. 나아가 이 인물이 형상화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