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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서감상문]울면서 읽었지만 너무 좋았던 이야기_밝은 밤

by 쭈야해피 2022.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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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소설책을 만났다.
아름답고 가슴 시린,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이야기.

백 년의 시간을 감싸 안으며 이어지는 사랑과 숨의 기록

젊은 작가상에서 종종 최은영 작가의 단편을 만났었는데, 팬은 아니었다. 잔잔하고 서정적인 작품이라는 인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많이 울고 웃고 동감했는지... '참 좋은 이야기다. 참 고마운 책이다.'는 생각을 연신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전쟁 이후, 근대기,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가족과 엄마와 딸의 연대기... 무뚝뚝한 표정의 엄마와 딸의 말하지 못하는 마음의 응어리까지 풀어낸 세심한 문장들이 나온다.
그래서 더 많이 울고 공감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말이 없는 사람들의 무수한 감정들이 글로 드러나는 순간.

나는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나오면 꼭 접어둔다. 나중에 들춰보면 2022년 여름에 이 책을 읽던 때에는 이런 문장들에 감명을 받았었구나... 하고 기억하고 싶어서 말이다.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나이지만, 그런 문장들은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마음속에 항상 가득하다.

pg. 14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마음을 꺼내서 씻을 수 있다면... 여기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은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였다. 그래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당분간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좋겠다..

마음에 상처가 난 사람에게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상처가 아물기 전까지는 아주 작은 일에도 다시 상처가 덧나기 쉽기 때문이다. 몸 외부에 난 상처는 치료도 하고, 보이기도 하니까 조심하는데 마음에 난 상처는 그게 쉽지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공감과 감동이라는 표시로 남겨둔 곳이 35페이지가량인데. 이렇게 독서감상문을 쓸 때 다시 한번 읽어보게 된다. 8월에 나는 아주 행복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훔쳤다. 감동이면서도 슬펐고, 슬프면서도 공감받는 기분이라서 고마웠다. 그런 기분을 느낄때면 예전에는 살아있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참 사는 게 고달파서 이런 감정들도 다 알게 되었구나.. 싶었다.

pg. 45
증조모는 할머니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래도 그때 군인들에게 끌려가지 않았던 건 너희 아버지 덕분이라고.
그대로 병든 어머니 곁에 남았더라면 자신도 동네의 힘없는 집 여자애들과 함께 끌려갔으리라고 말이다. 증조모는 할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증조부가 가장 최악이었던 순간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나를 구했어.

사람을 이해하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한 가지 이유만 충족되면 되는 때가 있는데. 그 이유가 한 사람의 평생에 붙들려 가기도 한다.

pg. 61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강인한 그녀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남편으로서의 일말의 권위마저 빼앗길 것이라고 예감했고, 아내가 속으로 자신을 비웃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모든 걸 버렸는데, 왜 그만큼의 대접을 안 해주고 내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 거지?

내가 하는 행동은 다 나로부터 오는 것이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전적으로 타인을 탓할 수 없다. 비록 나와 일심동체로 느껴지는 가족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마음이나 행동을 내가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것을 기대한다면 실망과 좌절을 맛볼 뿐이다.... 기대하는 만큼 내가 행동해야 한다. 결과는 기대 이하일지라도...

요즘은 무언가 이유와 원인을 찾기보다는, 나의 하루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가고 있다. 대충 살고 있다거나, 목표가 없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루 안에 일어나는 선택과 집중에 내가 가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삶이고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는 질문들과 의미들을 찾았지만, 이제는 나만의 답을 찾았다. 원인과 이유보다는 지금, 현재에 할 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갑자기 소설 속 이야기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왜 나왔냐고? 의식의 흐름이라고 해두면 너무 불친절한가?
100년의 세월 속에 4대에 걸친 기구한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 같고 내 이야기 같고 뭐 현재의 이야기 같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61페이지의 이야기는 분명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이야기였지만, 우리 엄마 아빠의 이야기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 또 어쩌면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pg. 278
"내가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 그걸 엄마가 어떻게 알아?"
엄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 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린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 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더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나도 사람이야. 나도 감정이 있어."

pg. 299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 중 나를 더 아프게 한 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pg. 333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어머니가 오십대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육십대에는 어떤 모습이었지 상상한 적도 많았어요. 어머니는 자기 신념이 강했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나를 데리고 늦가을에 대구로 피난을 가는데 어머니가 바들바들 떨던 것이 기억나요. 자꾸 농담을 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추워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떨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는 일평생이 그런 식이었죠. 바들바들 떨면서도 제 손을 잡고 걸어갔어요. 어머니는 내가 살면서 가장 사랑한 사람이었어요. 무서워서 떨면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나는 어머니를 닮고 싶었어요.



소설의 마지막은 화자의 가족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가족과도 같았던 하지만 자신만의 삶을 뚜벅뚜벅 옮겨서 걸어간 한 사람의 편지와 그를 만나게 될 설렘에 들뜬 할머니의 기대감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고 있다.

인생은 끝이 없지만, 어느 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마무리 짓거나 정리해 본다면 어떤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 약간의 변화와 조금의 희망, 소망이 있다면 좋겠지.. 그리고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도 같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 그곳에서 발견한 감동과 공감, 말 못하는 한 부분을 콕 끄집어내어 정확하게 표현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그것이 내가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최근 나는 가족들을 영원히 잃었고, 영원히 가족을 잃은 가족을 봐야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또 다른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봐 아주 가까이에서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마음을 꺼내어 씻어서 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빨랫줄에 널어 말리고 싶은 그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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