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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진이, 지니_까만 눈동자에 깃든 공포와 간절함

by 쭈야해피 2019.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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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 동안 총 4권의 책을 읽었는데.. 독서감상문은 다~ 뒷전이고 이 책만 간신히 어떻게든 써야겠다고 잡고 있다 ;; 나의 게으름의 끝은 어디쯤일까.. 큰일이다. 너무 게을러지고 게을러져서 어찌해야할지.. 이궁...

 

7년의 밤, 종의 기원 등을 읽으면서 우오와~ 대단한 작가님이다! 했던 정유정 작가의 신작이다. <진이, 지니> 타이틀만 보자면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정유정 작가라는 이름이 가진 힘은 대단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도, 알라딘에서 수험서와 함께 구매한 소설책. 헤드 카피는 생의 가장 치열했던 사흘 눈부시게 다시 시작되는 삶의 이야기

펼친 후 1주일도 안 되어서 다 읽어 버렸다. 요즘 나의 독서 속도에 비춰보건데 이것은 기적이었다. ㅎㅎㅎ

강렬한 도입! 궁금했다. 그래서 그 보노보는 어떻게 되는지, 진이는 어떻게 되는지, 진이는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지니는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과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의 속도. 역시였다.

 

인간의 이기심과 자연, 생태계의 비참한 오늘. 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도 이룰 수 있는 것도 선택의 영역도 없는 청춘. 혹은 그 포기의 익숙함에 길들여진 우리들. 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의 앞면과 선의, 뒷면과 판단. 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진심이라면 ..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전해질까? 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이야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는 눈물도 흘렸는데, 처참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한 동물이 더 처참한 상황으로 끌려다녀야만 하는 .. 그 경악스러운 현장을 목도하면서 누구의 잘못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는 아니야'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요즘은 정말이지 이게 진짜야? 실화야? 정말? 가능해? 이런 탄사가 쏟아지는 기사들이 매일같이 쏟아진다.

아이, 배우자, 부모, 이웃, 전혀 연관없는 사람까지 잔인하게 해치고 반성조차 없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내 옆을 스쳐지나갔을지도 모를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있다는 사실. 인권도 그렇게 유린 당하는데, 동물의 권리쯤은 쉽사리 넘어갈 수도 있지 않느냐고? 아니! 동물도, 자연도, 약자도, 이웃도 ... 그냥 '나만 괜찮으면 나만 즐겁고 행복하면 아~무 상관없다'는 극단의 이기주의.

함께사는 사회, 지구, 우리가 아니라, 나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만... 이라는 대체 개념이 이런 참혹한 상황들을 낳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 속에도 자라고 있는 그 생각 말이다. '아이고, 모르겠다. 신경 쓸 것도 많아 죽겠는데, 뭔 남의 일이야...' 라는 무심코 내뱉고 있는 말들.

 

지니는 진이가 될 수 있고, 진이는 지니가 될 수 있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무심코 지나쳐버린 그 행동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라는 자기합리화가 자신과 그 사회를 파멸로 몰아갈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사실. 혹시 이 소설처럼 단 한 번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연 나도 진이처럼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나의 내면과 그들의 내면을 깊이 살펴보는 혜안이 있기를 바래본다.

충격과 공포, 누군가의 도움에 고마움과 미안함, 간절함이 공존했던 나날들. 이 책을 읽는 그 순간들이었다.

 

pg. 14 프롤로그

문을 향해 발을 떼기 직전, 나는 인류가 저질러온 가장 전통적인 바보짓,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을 돌아보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흔히들 '오지랖'이라 부르는 저주에 걸려든 순간이었다. 아이는 창살 틈에 턱을 끼운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크고 말갛고 까만 눈으로, 손을 맞잡듯 내 눈을 붙잡았다. 나는 눈꺼풀이 움찔거리는 걸 느꼈다. 눈두덩 밑에선 동맥이 발끈발끈 뛰었다. 아이의 시선은 내 눈동자의 가장자리를 따라 느릿느릿 돌았다. 살피는 눈이었다. 조심스레 물어오는 눈이었다. 넌 누구야?

 

1부 무곡

pg. 42

이틑날 아침 나는 아버지가 퇴근하기 전에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내가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들로서의 유효기간이 종료됐음을 알리는 행동이었다. 모자 관계와 영원한 사랑은 등호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셈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어색한 작별 인사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평소처럼 '다녀올게요'라고 하자니 상황에 맞지 않고,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자니 처량 맞고, '행복하세요'라고 빌어주면 위선자가 될 것이므로.

 

pg. 68

 내 해결법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먹고 싶다는 욕망이 공포를 이길 때까지 잠자코. 서로 숨소리조차 내지 않는 정적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로 말하자면, 기다리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목표만 바라보면서 버티는 일을 나보다 더 잘하는 생명체는 지금껏 본 바가 없다. 나는 아이가 먼저 움직일 것이라 자신했다. 얼마 후, 자신한 대로 되었다.

 

 

pg. 346

 그런데도, 알면서도, 겁이 났다. 이 세상에 내가 부재하게 되리라는 사실보다 작별이 무서웠다. 내 삶에서 유일무이하고 전적인 존재, 나 자신과 헤어지는 게 미치도록 무서웠다. 다시는 나로서 생각하고, 나를 의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해야겠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지니 앞에 엎드려 애원해서라도, 살고 싶었다. 너의 생을 내게 양보해달라고 떼를 써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것은 내 안, 가장 깊은 바닥에서 울리는 본성의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떠난 후 부터 내게 죽음은 두려운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두려움을 피하려고 그것과 관련된 일을 하려 들지 않았다. 피할 수 없을 땐 고의적으로 감정을 격리시켰다. 죽음은 너의 일이지, 나의 일은 아니라 여겼다. ... ... 그럼으로써 나는 두려움을 따돌릴 수 있었다. 적어도 그렇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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