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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_최근 읽은 최고의 작품

by 쭈야해피 2019.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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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보고 구매한 책이다.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은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작가라고 칭송 받는다고 하는데, 무려 12년간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왜 그렇게들 극찬을 보내는지 알게되었다.

사실 나는, 맨부커상이라는 문학상도 2016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2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면서 알게 되었다.(-부끄럽지만 그 전에는 노벨문학상 밖에 몰랐다) 영국 소설도 잘 모르고, 호주 소설이라고 하면 호주 출신의 마커스 주삭 <책도둑> 정도만 읽은 게 전부다. (기억나는 게 없음 ㅠㅠ) 그래서 이책을 읽는 중에는 '전쟁소설이라서 칭송받나? 음 .. 잘 알기 힘든 내용이기는 하네' 정도였는데..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완전 깜놀하였다. 소설은 대서사는 이렇게 쓰는 거구나. 12년이 걸려야 이런 소설이 나오는 군아. 이야기에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다 녹아 있구나.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하면서 .. 자꾸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ㅠㅠ

(나는 안 될 거 같은데.. 이쯤에서 글쓰는 것을 포기해야하나. ㅠㅠ 엉엉엉...)

 

아무튼 최근 수년간 읽은 책중에 단연 최고임을 자랑한다.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다른 감상평을 더 쓸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요즘 죽음과 삶. 상실과 허상. 진실과 거짓. 이기심과 이타심. 삶을 지키는 힘.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아니 절대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계속 떠올라서 화가난다. 화가 나는 단계를 넘어 그런 생각이 몰려오면 체념하고 받아들인다. 알 수 없는 답변들이 주르륵 나열되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이들의 인생을 들을 때(그거 알려나? 예능을 보면서도 같은 감정을 느낄때도 많다) 가장 감사하다. 아무튼 그런 심신상태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여러모로 나에게 많은 생각들과 개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저번에 알.쓸.신.잡에서 히틀러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이 유대인들과 포로들을 학살한 것은 상부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 예능프로그램을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그런 변명을 했다는 것도 몰랐을뻔 했다. ;;) 아무튼 같은 맥락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정말 말도 안되는 지시와 복종, 살인과 방관, 그 이후에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삶, 아니 삶을 가장한 버팀... 그리고 잊혀질 권리 등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보통의 상식과 이성을 벗어나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 그렇기에 '누구를 가해자이다 피해자이다' 라고 단정하는 것이 어쩌면 굉장히 모순적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책을 읽고 난 나의 사견이고, 독자로서 나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분명한 가해자, 피해자, 나쁜놈, 불쌍한 놈, 이기적인 놈, 비열한 놈 등의 자기판단을 이입한채 보았다.

 

그리고 조선인 일본장교에게는 과하게 감정이입하였는데, '이런 나쁜 놈들..' 하면서 끝까지 읽고 약소국이라는 것에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결국에 최대의 피해자는 조선인들 그리고 힘없는 놈들 뿐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다. '돈 벌려고 그랬다고? 그래 돈 벌려고 가족을 지키려고 가족만 아니었으면 도망을 치든 자결을 하든 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별별 상상들을 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다.

 

이야기 가장 최후에 생각한 것은(스포일러 있음 주의!), 잊지도 잊혀지지도 않을 그 지옥의 지붕 위를 걸었던 그 삶의 일부분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사는 것도, 살지 않는 것도 아닌 삶을 살아야만 했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와 그의 아내 엘라. 휘청거리는 도리고의 삶도, 그런 그의 껍데기와 평생을 함께 한 엘라의 삶도, 결국은 엘라의 단 한 번의 거짓말 때문에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도리고는 가짜 가면을 쓴 자신의 현재의 삶을 선택하면서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거짓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건 어쩌면 최고의 핑계, 누구에게라도 필요했던 이유였을지도.

 

아빠가 생각났다. 돈을 벌기 위해 지독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던 아빠. 전쟁의 지독한 참상을 실제 겪었으면서도 가난때문에 다시 전쟁터로 직접 뛰어든 청년. 아빠는 술을 많이 드신다. 아빠는 술이 약이라고 하셨다. 이 이야기속에 살아남은 전쟁포로였자, 전쟁영웅이었던 그들의 아버지로서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 간신히 .. 죽은자들을 대신해, 아니 끝까지 살아난 자신들의 선택에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이제는 녹슬고 찌글어지고 형편없는 옛날 이야기로 치부되는 그 전쟁이야기 속... 옛날이야기들이 아직도 여전히 오늘밤 꿈에도 나타나 죽음을 맞이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잊혀질 수 없는 고통의 단어로 내뱉어지고야 만다.

 

전쟁은 어떤 나라의 잘못과 어떤 나라의 이익이 부딪혀 생겨나는지는 모르지만, 그 전쟁을 겪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그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잊혀질 수 없는 생지옥을 경험한 것이며, 끝나지 않는 지옥을 걷게 만드는 것임에 분명하다. 전쟁을 일으키거나 불안을 야기시키는 그 어떤 세력도 용서받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의 이웃, 친구, 가족, 사회의 인생전체를 송두리째 빼앗고 짓밟는 일이 전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든 이야기였다.

 

벌 한 마리 모란에서 비틀비틀 나온다 - 바쇼

pg. 14

재키 매과이어가 에번스 일가의 작고 어두운 부엌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도 울지 않았다. 아기들을 빼고는. 하지만 재키 매과이어는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아마도 마흔 살쯤, 어쩌면 그보다 더 위. 그런 그가 손등으로 곰보 자국이 있는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아니, 손등이 아니라 손가락이었나?  도리고 에번스의 기억 속에서 확실한 것은 그가 울었다는 사실뿐이었다. ... ...

그의 나이는 아홉살. 엄지에 피가 몰려 생긴 물집을 어머니에게 보여주려고 안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남자 어른이 우는 모습을 본 것은 전에 딱 한 번 뿐이었는데, 형 톰이 프랑스에서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기차에서 내렸을 때였다.

 

pg. 31

다키. 그는 그녀의 등을 향해 속삭였다. 마치 뻔히 알지 않느냐는 듯이. 하지만 뻔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고 말을 덧붙였다. 가디너.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아랫입술이 그녀의 살갗에 닿았다. 그 친구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당신 얼굴과는 달랐겠죠. 그녀가 말했다. 그건 무의미한 말이라고 도리고 에번스는 생각했다. 다키 가디너의 죽음에는 의미가 없었다. 이렇게 분명하고 단순한 사실을 왜 글로 쓸 수 없는지, 다키 가디너의 얼굴이 왜 보이지 않는지 의아했다.

 

pg. 55

여긴 씨발 오스트레일리아의 씨발 동쪽도 아니야. 잭 레인보우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은둔생활을 하는 종교인 같았지만, 혀는 부두노동자 같았다. 하지만 실제 직업은 홉을 재배하는 농부였다. 여긴 북쪽이야. 그가 말했다. 그러니 다음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모를 수밖에. 아예 지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잖아. 씨발, 멀고 먼 북쪽이라고.

 

pg. 56

도리고 에번스는 아직도 자신을 붙들고 있는 다키 가디너에게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토끼 헨드릭스가 먼지투성이 치아 두개를 입안으로 다시 밀어넣고 있었다. 얘비 버로스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 ... 그날 늦게야 그들은 얘비 버르사 가져온 뜨거운 상자에 들어 있던 포리지를 먹었다. 이미 다 식어버린 포리지를 먹으며 아무도 수탉 맥니스 옆에 안지 않았다.

 

pg. 75

두사람 모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또다른 의무가 되어버렸다. 하기야 지금 그의 인생은 온통 의무 천지였다. 아내에 대한 의무. 자식들에 대한 의무. 일과 위원회와 자선을 위해 수행해야 하는 의무. 리넷에 대한 의무. 다른 여자들에 대한 의무. 진이 빠졌다. 이런 의무들을 수행하려면 체력이 필요했다. 때로는 그 자신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서 이런 업적을 누가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의무들을 전부 수행하는 데에는 묘한 용기가 필요했다.

 

pg. 523

뒷좌석의 세 아이는 검댕을 잔뜩 묻힌 채 조용히 앉아서 주위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방부제 냄새, 바람과 불길의 포효, 거칠게 흔들리는 차, 열기, 난도질된 고기처럼 생살이 드러난 감정,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며 함게 살아온 두 사람의 고통과 절망, 함께 살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삶, 애정과 질병과 비극과 농담과 수고로 이루어진 음모, 결혼생활, 기묘하고 무서운 인간 존재의 한없음.

가족.

 

pg. 543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가 마지막 몇 장을 뜯어 화장지로 쓰거나 담배를 말아 피운 모양이었다. 희망도 기쁨도 이해도 없었다. 마지막 페이지가 없었다. 그의 인생이라는 책이 그대로 끊어져버렸다. 그의 발아래에는 진흙이, 머리 위에는 더러운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그는 평화도 희망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도리고 에번스는 사랑이야기가 영원히,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끝이 없는 세계였다. 그는 지옥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사랑 또한 지옥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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