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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팩트 따윈 모르겠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_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소설집)

by 쭈야해피 2017.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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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선물로 받은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집 <오직 두 사람> 출간 되자 마자 사고 싶었으나, 읽지 않고 쌓아둔 책들이 많아 못사고 있었는데, 친구가 선물로 사줘서.. 결국 다른 책들을 그대로 쌓아둔채 혹은 읽었으나 감상문을 쓰지 않은채 집어들어서 읽어버렸다.

 

 

총 7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데, 그 중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 <오직 두 사람>이고, 이 단편에 대한 헤드카피가 '그 두 사람,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에 대해서' 라고 써있다.

 

소설집 말미에 '작가의 말' 을 읽어보면

7년 동안 쓴 작품들을 모아 만든 소설집인 만큼, 2014년 겨울에 발표한 <아이를 찾습니다>를 기점으로 그 이전에 쓴 3편과 그 이후에 쓴 4편이 다른 양상을 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모두 다 다른 작가가 쓴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기존에 읽었던 소설집들은 아무래도 그 작가의 성향이나 문채 흐름 등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소설집은 문득 문득 .. '아 이건 김영하 작가의 소설집이지?' 스스로에게 일깨워야 할 만큼 각각의 느낌들이 달랐다.

모조리 어두운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고는 하나, 단편은 아무래도 무거운 소재가 많으니...라고 넘겨버리면 그만이니까~;;

 

무튼, 7년이란

그렇게 다 다른 느낌의 문장과 스토리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히 긴 시간인거 같기도 하다.

 

소설집 서두에 이렇게 아내에게 받치는 책 이라는 것을 명시하였다.

작가의 아내로 함께한다는 건 일종의 작가로서 함께 산다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7편의 소설 모두 인상깊었지만, 그 중에서 꼽으라면 처음의 <오직 두 사람>과 마지막의 <신의 장난>이었다.

순서를 누가 정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순서가 꼭 중요한 것도 아니겠지만, 편집자와 소설가의 편찬 노하우는 인정해야하는 순간인거 같다. :")

 

<오직 두 사람>

세상 누구도 알 수 없는 두 사람만의 언어가 있다.

그리고 그 둘 중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는, 오직 한 사람에게 남겨진 시간.

... ... 누구에게도 명확하게 이해받을 수는 없다는 현실.

 

실제하는 언어를 가졌던 두 사람중 남겨진 한 사람에게,

실제하지 않지만 두 사람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남겨진 한 사람이 쓴 편지.

어쩌면 그렇게 남겨진 사람의 존재를 알고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일지 모른다.

 

pg. 36

아빠에게 붙들려 살아가는 저를 한심해하고 그랬을 것 같더라고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제 육감이 그랬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언젠가 현정이가 저에게 잘 아는 한국인 세러피스트가 있다며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거든요. 그때 현정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해요. 그런 거 아세요? 잘 배운 미국 백인의 전형적인 미소 같달까. 나는 흠잡을 데 없는 공정함과 바다 같은 너그러움을 갖고 있으며 불쌍한 너에게 작은 도움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이를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으니 어서 결정하렴, 같은 뜻을 담은 미소요.

 

pg. 37

건강에도 나쁘고 담뱃값도 비싸니 이참에 끊자고 결심을 하고 성공도 했어요. 그런데 공허해요. 늘 적막한 시골길을 걸어가는 느낌이에요. 공기도 좋고, 경치도 아름답고, 그런데 한량없이 권태롭기만 한 기분.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 나를 밀어낸다는 저항감. 그런 기분 언니는 모르시죠? 그런데 미국에 가면서 끊은 게 하나 더 있잖아요? 인생에 도움 하나도 안 되는 유독하고 중독적인 존재. 아빠요. 둘과 거의 동시에 결별했으니 그 공허감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아채기가 어려웠어요. 아빠와 담배가 없는 삶. 둘 중 그 어떤 것도 다시 시작하기 싫었어요. 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알고는 싶었어요. 이 공허와 권태는 둘 중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가.

 

pg. 41

... 다시 읽다가 문득 언니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그 순간의 제 감정은 그대로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을 거잖아요. 언니, 전 이제 괜찮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도 알아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게 막 그렇게 두렵지는 않아요. 그냥 좀 허전하고 쓸쓸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희귀 언어의 마지막 사용자가 된 탓이겠죠.

 

<아이를 찾습니다>

pg. 49

성민이는 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던 것일까? 어째서 낯선 사람이 끌고 가는 카트 안에서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을까. 무지는 인간을 암흑 속에 가둔다. 그들 인생에서 사라진 이삼 분이 그 암흑 속에 있었다. 그들은 그 암흑으로 들어가 서로에게 상처를 냈다. 이 무신경한 엄마야, 화장품을 사러 갈 거면 말을 했어야지. 미라는 반격했다. 누가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서 애도 내팽개칠 줄 알았나?

그들은 마트와 경찰서를 오가며 그날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불길한 예감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생의 원점>

pg. 92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 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옥수수와 나>

pg. 122

 수지는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갔지만 나는 카페에 더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 수지를 만나면 나는 그 옛날의 철없던 시절로 돌아가버리고만다. 응석을 부리고 어깃장을 놓고 위로를 구걸한다. 나는 이제 옥수수가 아닌데, 정말 옥수수가 아닌데, 그런데 수지가 그걸 모르고 있으니, 내가 이제 더이상 옥수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pg. 143

 혹시 두통약이 있을까 싶어 집을 뒤지다가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서랍을 열었다. 콘돔 한 상자와 안대, 그리고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 있었다. 진짜 총은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온다. 유럽의 관광지 성당에 들어갔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삶과 죽음, 성과 속의 경계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권총의 손잡이에는 글록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GLOCK GmbH. 버지니아테크 총기 난사 사건에서, 그리고 애리조나 투손의 기퍼즈 의원 저격 사건에서 사용됐다는 권총이었다. 사담 후세인도 체포되던 당시에 이걸 갖고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총을 제자리에 다시 놓아두었다. 사장에 대한 관념을 교정해야 할 시간이었다.

 

pg. 151

나는 쥐가 돌아다니는 집에서 아랫배가 뻐근해질 때까지 글만 썼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미친듯이 써나가는 가운데 내 영혼과 육체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지금까지 꿈꿔왔던, 모든 창작자들이 애타게 찾아 헤맨다는 에피파니의 순간일지도 몰랐다. 뮤즈가 강림한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됐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최은지와 박인수>

pg. 197

밀물처럼 몰려든 한 무더기의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야 최은지가 내게 던지고 간 충격의 강도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뭐가 그렇게 당황스러웠던 걸까. 최은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낳겠다는 것? 아니면 싱글맘으로 계속 회사를 다니겠다는 것?

 

pg. 200

 "그러니까 개수작이지.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타인에게 개수작을 하는 인간들이 있어. 잔잔한 호수만 보면 돌을 돈지는 어린애들처럼."

 

pg. 230

 "예쁜 여자들만 편애한다. 눈빛이 느끼하다. 엄청 짠돌이다. 민주적인 척하면서 직원들 의견은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 잘난 척이 심하다. 회의 때도 혼자 떠든다."

 "너희 회사 영맨들이 네가 듣고 싶어하는 얘기만 전해준 건 아니고?"

 "근데 너 좀 충격받은 얼굴이다?"

 "기분좋은 얘기는 아니잖아?"

 "씹히라고 있는 게 사장이야. 잘 씹혀주는 게 사원 복지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하지 마. 그럴수록 위선자처럼 보여."

 "어쨌든 그 여자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직원들한테 유전자 검사 결과를 공표할 수도 없고. 공표한다고 믿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냥 감당해. 오욕이든 추문이든. 일단 그 덫에 걸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인생이라는 법정에선 모두가 유죄야. 사형선고 받은 죄수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신의 장난>

신입사원 연수의 일환으로 '방탈출 게임'을 시작하게 된 네사람.

그런데 그것은 연수도 게임도 아닌, 납치와 감금이었던 것이다.

 

하하.. 간절히 바라던 취업의 문턱을 넘은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가혹한 현실.

실은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려 희망도 내일도 미래도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일상을 비유한 설정.

자신들이 가진 모든 논리로 탈출과 귀결을 구해 보려고 하나,

오히려 우울증 환자로 자포자기의 상태에 있던 주인공만이 최후에 희망을 가진자가 된다.

 

어차피 내일은 오늘보다 더 힘들수도 있으니까..?!

pg. 246

 "신도 우리의 집사일지 몰라요. 우리를 예뻐하다가도 가끔은 귀찮아하기도 할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아니면 우리가 신을 떠나거나. 그럼 고난이 시작되는 거죠. 밥이나 주는 집사인 줄 알았는데 실은 전 존재가 그에게 달려 있었던 거죠."

 

pg. 247

 아, 수진은 속죄를 믿고, 강재는 자기 덩치를 믿고, 태준은 인과관계라도 믿는데, 나만 아무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무임승차자가 된 것이로구나. 나도 믿는 것이 있어, 지리산 도령 강재씨. 나는 우울을 믿어. 인간은 천둥이 치고 비가 퍼붓는 궂은 날씨에는 울적하도록 진화했어. 가만히 동굴에 틀어박혀서 날씨가 좋아지길 기다리는 게 유리하거든. 에너지를 아끼면서 말이야. 인류가 이렇게 진보한 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과오에 집착해온, 사실 나 같은 우울증 환자들 덕분이야. 그들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 알잖아? 이건 더이상 게임이 아니야. 우린 누군가에게 유인, 납치돼 감금당한 거야.

 

pg. 257

 "정은씨, 난 언제나 현재가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여기만 지나가자.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런데 늘 더 나빠졌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더 행복했어요. 그럼 지금 이 순간도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 그래도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서는 가장 젊고, 제일 괜찮은 순간일 수 있다는 건데...... 우리 모두 여기서 늙어가다가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처음 들어왔던 때가 그래도 좋았어. 그땐 젊었고, 희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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