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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가장 미천한 자조차도 깔볼 수 있는 고아_'올리버 트위스트'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by 쭈야해피 2017.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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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실상

셰익스피어와 겨누는 영국 최고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스크루지 할아버지를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한(?) 바로 그 소설가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던 <올리버 트위스트>를 제대로 다시 읽었다.

 

한 달에 걸쳐.. 결코 어려운 문장도 내용도 아니었는데,,, 독서의 질과 양이 현저히 떨어진 요즘이다.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즈 많이도 들었는데 그의 소설을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가 보다.

풍자와 해학이 넘쳐나니 내가 반할만도 하다.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필자인 본인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기자 출신이라고 하더니 문체도 실랄하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전기를 이끌어가면서 각 장을 배치한 이유와 앞뒤의 흐름까지 개입하여 표현하였다. 이런 소설의 구조는 사실 본적이 없다. 그래서 정말로 이 소설가에게 반해가면서 읽었다. ㅎㅎ

 

그리고 내가 알던 올리버 트위스트의 내용이 이런거 였나?? 톰 소여의 모험과 헷갈려해 가면서 소공녀의 이야기도 떠올려 가면서... 국민학교 시절 우리집과 내방과 책장과 방학때 읽어야했던 필독서 리스트들이 떠올랐다. 추억 소환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19세기 영국, 런던, 고아와 빈민층, 거리의 아이들과 몹쓸 어른들, 악한 자와 사생아, 병, 죽음, 가족, 베풂과 친구. 책을 읽는 동안에 우리나라의 6~70년을 떠올리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견주어 볼만도 하고,,, 오늘날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이용 당하는 것은 언제나 약자이고 최약체는 보호자가 없는 고아와 여자이고 돈과 욕망을 위해 어떠한 악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 악의 실상은 마침내 세상에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이니까.

 

이 소설은 권선징악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구빈원에서 고아와 빈민층에 으름장을 놓던 관리는 인생의 마지막을 자신이 구빈원의 빈민으로 몰락하고,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아무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던 꼬마 올리버는 소중한 인연들을 통해 재능을 개발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행복(?)한 이야기로 끝난다.

 

그 간의 고통과 고비, 숨겨진 계략과 누군가의 용기, 그에 따르는 희생과 악인의 실체가 잘 얽히고 섥혀있다가 서서히 풀어나가는 것이 물론 이 소설이 박수를 받는 이유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와 21세기는 독자도 사회도, 그 간 인간의 발전(?)이라고 착각한 여러 기술과 기교에 의해 권선징악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보다는 숨겨진 이야기를 더 선호하게끔 바뀌었다. 행간의 숨겨진 그렇지만 악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본능적 끌림에 의해 이야기들을 베베 꼬여서 풀어진다. :") 다 읽고 보니 그 시절 간단명료한 결말을 향해가는 이 이야기가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물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도록 올리버와 그 시대의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이 부족한 이야기는 애초에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기 힘든 거겠지?  

 

올리버 트위스트의 착한 심성은 타고난 것이라는 설정이었겠지만, 고통과 유혹, 강압과 협박, 죽음에 이르기까지라도 옳고 바름을 지키고자 했던 그 꼬마의 심성은 예나 지금이나 존중받고 좋은 어른들에 의해서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 1 

pg. 20

 아, 올리버 트위스트는 의복의 위력을 훌륭하게도 예시하는도다! 지금까지 그의 유일한 옷이던 담요자락에 싸여 있는 동안에는 이 아기가 귀족 나리의 아기라고도 할 수 있고 거렁뱅이의 아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잘난 체하는 양반이라 해도 그를 잘 모른다면 이 아기의 사회적 지위를 알아맞히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동일한 직무를 이미 숱하게 수행하느라 누렇게 바랜 캘리코 천으로 된 헌옷으로 그를 감싸고 이름표와 번호표를 달아놓자 올리버는 즉시 자기에 합당한 신분으로 분류되었다-교구가 책임지는 아이, 구빈원 고아, 끼니의 반은 굶고 뼈빠지게 일만 하는 미천한 처지, 세상을 헤매다니며 쇠고랑을 차거나 구둣발에나 차일 신세, 누구나 경멸하고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 인간.  

 

pg. 40

 "그래서 그 아이를 못 데려간다 이거죠, 나리들?" 갬필드씨가 문 가까이에서 멈춰서서 말했다. "그래." 림킨스씨가 답했다. "그게 아니면, 일이 더럽기 때문에 적어도 자네가 우리가 제시한 사례금보다 좀 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갬필드씨는 안색이 밝아지면서 날쌘 발걸음으로 탁자로 돌아와서 말했다. "얼만데요, 그러면, 나리들? 자, 불쌍한 제게 너무 심하게 그러지마세요. 얼마 주실 건데요?"

 

pg. 47

이사진은 한자리에 모여 이와같은 참으로 현명하고 건전한 모범을 따라, 올리버를 작은 무역선에 실어서 어디든지 건강에 해로운 항구로 보내는 방편을 궁리했다. 이것은 그 아이를 처리할 최선의 방법처럼 보였다. 어느날 선장이 저녁식사 후 심심풀이로 그를 채찍질해 죽이거나 철봉으로 그의 뇌를 내리쳐 터뜨릴 법도 했으니, 이 두 가지 소일거리는 잘 알려진 대로 이 부류의 신사 양반들이 매우 선호하는 일반적인 오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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