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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서감상문]연년세세_엄마로부터 이어진 파편들

by 쭈야해피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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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기.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지난 3월에 다 읽었던 책인데, 감상문을 써야지 써야지 하고 미루어두었다가 이제 써보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후루룩 뚝딱하고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제는 그때의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해 낼 수는 없겠지요. 역시 뭐든 바로바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 거 같습니다.

 

감상문 쓰기에 얼마나 게으른지는 매해, 매월, 매번 스스로에게 따져 묻고, 고치려고 노력해 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나태한 모습만을 발견하게 되네요. 아... 글쓰기를 이렇게 귀찮아하면 안 되는데, 책 읽기를 이렇게 소홀히 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어쩌면 '본래 그런 거야'라고 이쯤에서 받아들여야 하나 봅니다. (감상문이 설렁설렁 엉망이더라도 이해해 달라는 핑계가 길어졌습니다.ㅋㅋㅋ)

 

황정은 작가님연년세세(年年歲歲)는 '여러 해를 거듭하여 계속 이어짐'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해.해.해.해.라는 단어가 이어지는 거거든요. 처음에는 제목이 뭐 이런가. 거듭해서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보다 보니, 그리고 읽다 보니, 생각하다 보니. 좋은 제목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참 어렵네 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작가님은 이런 제목의 책을 한 권 가지고 싶으셨다고 하네요. 

 

작가님의 인터뷰 yes24 팟캐스트에서 진행하였는데요. 오은의 옹기종기 [책읽아웃] 링크를 살포시 올려봅니다. 

naver.me/xLvxmeCs 

 

[책읽아웃] ‘연년세세’라는 말이 제목인 책을 한 권 갖고 싶어서 (G. 황정은 작가) | YES24 채널

지금 제 옆에 가급적 오래 글을 쓰다가, 너무 무감해지고 부주의해지면 미련 없이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연작소설 『연년세세』를 펴낸 ‘우리의 작가’ 황정은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0.12.17)

ch.yes24.com

 

 

 

책에는 이순일과 한영진과 한세진과 이미영, 한만수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이순일의 이야기이자, 순자의 이야기이자, 이순일의 가족들, 보통의 우리들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 '아.. 그런 마음일 수도 있겠네.' '아.. 그래서 그랬나?' '아..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읽는 중간중간에 마음이 아픈 것도 같았고, 눈물이 흘렀던 것도 같고,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고, 오해라고 변명 같은 걸 내뱉었던 것도 같습니다. 

 

감정이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엄마 생각이 많이 많이 났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만수처럼 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한만수처럼 누나의 도움을 받아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7년 동안 열심히 일을 했고. 그래서 모은 돈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가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친구의 조언을 따라, 그간 쌓은 8년 차의 경력을 포기하고 공부를 하러 떠났습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출장을 가기도 하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교회에서 단기 선교를 가기도 하면서 해외 이곳저곳을 방문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면서 세상살이의 힘듦을 경험하고,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깨달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넘어졌고, 힘들어했고, 아직도 잘 몰라 헤매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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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어디가? 잘도 돌아다니네.. 엄마는 안 데리고..

나: 엄마도 가고 싶어? 

엄마: 아니..

나: 엄마는 여행 가는 거 싫어하잖아

엄마: 엄마도 여기저기 다 다니고 싶지. 멀리도 가보고 싶고.

나: ?? 그래? 가고 싶어? 어디? 같이 갈까?

엄마: 아니.. 너나 많이 돌아다녀.

나: 왜 같이 가자. 어디 유럽 이런 데 갈까?

엄마: 그래. 너 돈 많이 벌면..

나: 돈 많이 언제 벌어. 그냥 가야지.

엄마: 돈도 없는데 어딜 가.

나: 갈 수 있어. 갔다 와서 벌면 되지. 유럽은 비행기 10시간 넘게 타야 는데 괜찮아?

엄마: 하이고~

나: 가자. 어디 갈까?

엄마: 됐다. 안 간다.

나: 내가 돈 많이 벌어야겠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엄마는 딸이 여기저기 다니는 걸 부러워하셨다는 걸요. 여태도 말은 한 번 안 하셨는데. 언제고 억척스럽게 일만 하시면서 좋은 건 다 딸들 주려고만 하셨는데. 아마도 힘들게 돈을 버는 것도, 멀리서 혼자 사는 것도, 시간이 되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도.. 엄마는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걸 한편으로는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늘 '그렇게 살면 어떻게 해~'라고 잔소리를 하셨지만, 속으로는 부럽다 하셨던 걸요. 

 

저희 엄마는 지금도 같이 여행 가자고 하면 절대 같이 가지 않으십니다. 엄마도 엄마 친구들이랑 여행 가는 걸 좋아하시지, 저랑 같이 어디 가는 걸 내켜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래도 여기저기 들렀다가 고향집에 오는 저를, 여기저기 다니고서 엄마에게 전화하는 저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pg. 138
잘 살기. 
그런데 그건 대체 뭐였을까, 하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잘 살기를 바랐다. 끔찍한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기를,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랐어.
잘 모르면서 내가 그 꿈을 꾸었다. 잘 모르면서.
너도 이런 거 필요하냐?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어 짜증이 나기도하는 엄마의 화법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여전히 그 시절의 끔찍한 일들과 기억들이 부모님들의 인생에는 여전히 새겨져 있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도 많겠지만, 그래도 해마다 이어지는 가족들의 삶과 이야기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다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네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 
울고 실망하고 환멸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파묘

pg. 17

한영진과 한중언은 거기 뭐가 있다고 매년 기를 쓰고 가느냐는 입장이었다. 해마다 사람 키만큼 자란 풀들을 낫으로 끊어내며 가야 하는 마른 도랑과 뱀이 늘어져 있곤 하는 덤불,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해 휘어진 나무와 이끼들, 볼품없이 이지러진 봉분과 멧돼지가 다녀간 흔적들, 묘를 둘러싼 밤나무, 소나무의 침묵을 그들은 몰랐다. 이순일이 매년 낫으로 길을 내며 거기로 올가는 이유를 한세진은 이해했다. 엄마에게는 거기가 친정일 것이다. 그 묘가.

할아버지. 나두 이제 할머니가 되었어. 내년엔 못 올지도 몰라요. 

 

pg. 27

절할 때 보니 네 아버지가 저만큼 떨어져서 뒷짐을 진 채 굳이 돌아서 있더라, 그래 어처구니가 없어서, 거기서 뭘 하느냐고 이리 와서 절 올리라고 말했더니 처가 쪽 산소엔 벌초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잡소리를 하기에 너무 당혹스럽고 열 받아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얼른 절 올리라고 역정을 냈는데 그걸 듣고도 뒷짐 지고 서 있더라며 그 뒤로 야속하고 징그러워 같이 오자고 하지 않았다고, 네 아버지와 동행한 것은 그것 딱 한 번으로 그쳤다고 이순일은 말했다. 

 

pg. 44

그런 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 인사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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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pg. 57

한만수가 뉴질랜드로 가겠다고 했을 때 한영진은 그 선택을 믿을 수 없었지만 나중엔 한국에 남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거기서는 같은 시간을 일해도 세배를 벌 수 있다고 한만수가 말했다. 필요한 자격을 갖춰 취업에 성공하면 누나에게 은혜를 갚을 거라고 그 애는 말했다. 필요하다는 교육과정이 자꾸 늘어나고는 했지만 한만수의 뉴질랜드 학비는 일종의 투자 같은 거라고 한영진은 이해했다.

 

pg. 63

아니지, 한영진이 한세진의 운동화를 종종 신고 나갔다. 한세진은 언니가 그렇게 해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남은 걸 신었고, 자기걸 건드리지 말라고 나중에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무언가를 느끼기는 했을 것이다. 어떤 감정을. 한영진은 최근에 그걸 생각할 때가 있었고 그러면 얼굴이 빨개지곤 했다. 어린 동생에게 잘못을 했다고 느꼈다. 손써볼 수 없는 먼 과거에 그 동생을 두고 온 것 같았다. 이제 어른이 된 한세진에게 사과한다고 해도 그 시절 그 아이에겐 닿을 수가 없을 것 같았고.

 

pg. 70

실망스럽고 두려운 순간도 더러 있었지만 한영진은 김원상에게 특별한 악의가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그 사람은 그냥, 생각을 덜 하는 것뿐이라고 한영진은 믿었다. 한영진이 생각하기에 생각이란 안간힘 같은 것이었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그 생각을 말이나 행동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버텨보는 것. 말하고 싶고 하고 싶다고 바로 말하거나 하지 않고 버텨보는 것. 그는 그것을 덜 할 뿐이라고 그게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

 

pg. 78

그 말 이후로 이순일이 다른 말 없이 자러 내려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묵직한 자루 같은 것이 명치를 향해 가라 앉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의 몸이라는 것을...... 그것의 정체를 이제 다 안다고, 알아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그 순간에 그 이야기가 그렇게 끔찍했는지 모르겠다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알았으니까 이제 자요. 너무 늦었어.

엄마는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을 거라고 한영진은 생각했다. 이순일이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한영진은 그걸 알았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그 이야기가 이제 한영진에게 와 있었다. 한영진은 그 생각을 하느라고 자꾸 멍해졌다. 도대체 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pg. 81

그런데 엄마, 한만수에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아.

그 애는 거기 살라고 하면서 내게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어. 돌아오지 말라고. 너 살기 좋은 데 있으라고.

나는 늘 그것을 묻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pg. 84

너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

기억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누군가의 목소리로 한영진은 그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전철 안에서. 누가 말했는지를 보려고 한영진은 고개를 돌렸다. 전철이 지하 구간을 벗어나 지상의 밤 속으로 나아간 뒤 철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무명

pg. 91

이순일은 1967년 이후로 순자와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송정리 시장 일부와 인근 집 몇 채를 전소시킨 화재가 일어난 뒤로는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순일은 여태 자기가 그렇게 믿었다는 걸 알았다. 순자는 독일에 있다. 독일에 갔고, 독일에 있다. 보고 들은 것처럼 그 믿음이 생생했다. 

 

pg. 109

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다투거나 하면 즉시 개입할 수 있었는데, 한쪽을 혼내거나 둘 다 혼내거나 달래거나 중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릴 때만큼 자주 다투었다. 그게 무엇이든 이순일은 가책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든, 자기 손으로 건넨 것이 그 아이들의 손으로 넘어가 쪼개졌고 그 파편을 쥐고 있느라 아이들이 피를 흘리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pg. 133

망실된 그들의 이름은 이순일으리 삶이 끝날 때 비로소 완전한 망이 될 것이다. 이순일이 그 문서를 닫은 사람이었다. 이순일은 거기 적힌 이름들이 겪은 일을 누구에게도 넘길 생각이 없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로든 기록으로든 사람은 무언가를 세상에 남길 수 있고, 남기는 데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숱하고 징그러운 이야기를 ...... 그것을 내가 다시 생각하며 말해야 하는가. 이순일은 아이들이, 한영진과 한세진과 한만수가 그 일을 이야기로도 겪지 않기를 바랐다.

 

pg. 142

그러나 한영진이 끝내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라고 이순일은 생각했다. 그 아이가 말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나도 말하지 않는다. 용서를 구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있다는 것을 이순일은 알고 있었다. 순자에게도 그것이 있으니까.

 

다가오는 것들

pg. 146

어른이 되는 과정이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하미영은 말했다. 이미 떨어져 더러워진 것들 중에 그래도 먹을 만한 걸 골라 오물을 털어내고 입에 넣는 일, 어쨌든 그것 가운데 그래도 각자가 보기에 좀 나아 보이는 것을 먹는 일, 그게 어른의 일인지도 모르겠어. 그건 말하자면, 잊는 것일까. 내 아버지는 그것이 인생의 비결이라고 말했는데. 내게는 이상한 기억이 있었거든.

 

pg. 178

안나가 거기서 살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거라고, 안나는 한국에서 덜 외롭고 더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고 노먼은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안나는 안나의 삶을 살았어, 여기서.

 

pg. 182

하미영이 옳다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삶은 지나간다 바쁘게. 나탈리는 바쁘게. 울고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다시 말해 사랑하면서. 그것이 나탈리를 향해 다가오니까. 

 


pg. 84 에 나왔던 "너가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는 없어"라는 문장은, 정확하게 엄마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 있냐?"고 말이죠. ... 살면 살수록 '엄마의 말이 맞아. 엄마 말 잘 들어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엄마의 말을 듣지 않아서 후회하는 날들이 더 많습니다.

 

끝으로 위에 링크로 걸어 둔 황정은 작가님의 인터뷰에서 추천 한 책이 있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국문학은 이주혜 작가의 「자두」와, 해외문학은 서보 머그더의 「도어」라는 작품이었는데요. 저도 도어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감상문을 남겨봤었습니다. 하여 추천도서로 남겨 놓습니다!!

 

도어 - 철문처럼 굳게 닫힌 80대 육체노동자의 벽너머에 존재한 것들 (tistory.com)

 

도어 - 철문처럼 굳게 닫힌 80대 육체노동자의 벽너머에 존재한 것들

이책을 구매하게 된 카피라이트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여성 작가가 여성 인물로 다시 쓴다면?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2015

hearthous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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