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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서평]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_김영하 작가

by 쭈야해피 2021.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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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의 헤드카피

2010년 문학동네에서 출판된 소설집을 2020년 복복서가에서 개정판으로 출판하였다. 덕분에 김영하 작가님의 숨은 단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개정판은 전 6권 세트로도 판매하는데. 디자인이 심플하고 예쁘다. 더불어 작가님이 손수 그린 일러스트? 그림? 표지디자인?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이중 읽은 책도 있고하여 2권만 우선 구매하였고, 그 중 1권을 마침내 다 읽었다. 

 

이 책의 헤드 카피는 사진에 나와 있듯이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몰래 빌려온 것만 같은, 그런 시간 

 

총 1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1부의 8편은 보통의 단편 분량이며, 2부의 5편은 아주 아주 짧은 콩트 분량의 이야기이다. 단편의 매력과 김영하 작가님의 상상력과 스릴스릴 분위기가 젖어있어서 읽으면서 묘한 기분에 빠질 수 있다. 

 

나는 아파서 꼼짝 못하는 9일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 사실 다른 사람들은 하루나 이틀이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과 내용이다. 책을 읽는 속도와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시절이다.. 

 

13편의 단편 중 가장 강렬한 소설은 1부의 첫번째 소설 「악어」이고, 다음으로는 퀴즈쇼여행, 로봇 순이다.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쓰는 경지? 대단함? 뭐 그런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은 티슈 한장에 다 담아낸 2부의 명예살인」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2008년 미국 에스콰이어 잡지 'Napkin Fiction Project'에 쓴 소설 [명예살인]

 이렇게 이 소설집은 새로운 시도와 시선, 상상으로 가득한 이야기인데. 나의 감상도 감상이지만, 책 제일 마지막장에 실린 2010년 9월 Culture Seoul 인터뷰에서 작가님이 한 말로 잘 표현이 될 것 같아서 옮겨 적어 본다. 

 

"수록작 중에 '한낮에 꾸는 무서운 꿈'과 같은 내용이 많이 들어 있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저는 이전부터도 무서운 백일몽 같은 작품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고귀한 신중함' 이라는 구절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고귀하고 신중하게 우리의 한순간으로 들어오는 호랑이 같은 것이, 바로 소설의 존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호랑이 자신은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스럽게 작업하고 나가지만, 사람들에게는 호랑이를 본 꿈이 생생하게 존재하죠. 그게 바로 소설의 본질인 거예요. 사람들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하는 소설도, 사실은 독자의 깊은 무의식 속에 어떤 인상을 남겨놓고 퇴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그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잘 쓴 소설의 경지예요. 누군가의 백일몽 속에 조용히 들어왔다가 사라지는 것,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였던 나의 존재가 혹여 방해가 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것. 어떤 인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
- 김영하 2010년 9월

어쩜 11년 전에도 저렇게 말씀을 잘 하셨을까요.. >.< 저도 딱 한 번 인터뷰로 뵌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말씀을 너무 멋지게 잘 하셔서 그 이후로 열심히 작가님 책을 읽었답니다. :")

 

조용히 내 속에 들어와 '어떤 것'을 남기고 가는 이야기들을 읽어보는, 좋은 봄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어

pg. 13

그날 이후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도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몇몇 여자애들이 앓아누웠다. 별로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 생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pg. 19

그때부터 이 동물원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 되면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오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동물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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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pg. 37

그는 카그라스증후군이라는 특이한 뇌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을 때, 가벼운 뇌출혈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출혈이 일어난 부위는 하필 우뇌에서 친밀감에 대한 정보를 관장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마비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는 특히 그전까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인식하는 데 혼란을 겪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 아주 가까운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느끼는

 

pg. 39

"보고 싶었어." "우연을 운명으로 착각하면 안 돼." 

 

pg. 41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장난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죽은 척하기. ... ... 폭파해체되는 빌딩처럼 그녀의 몸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퀴즈쇼

pg. 85

고작 스물네 살의 여자애가 불러일으켰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소문들이 메뚜기떼처럼 내게 몰려왔다. 그들이 말한 바대로라면 인간성도 나쁘고 남자관계도 복잡하고 무책임한데다가 내숭 그 자체인 여자애를 나는 왜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잘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해준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로봇

pg. 157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어찌하다 누군가의 '한 게임'이 되어버렸을까. 일기장에 아름다운 문구를 적어넣던 소녀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착하고 잘생긴 남자와 함께 사랑의 모험을 떠나려던 여자아이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아니, 그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선량하고 평범한 직장인과 할인쿠폰을 모아 피자를 사먹고 생일이면 그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그런 삶이면 족했는데. 

 

pg. 164

그런데 이 3원칙이 딜레마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아시모프도 그런 상황을 설정했지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로봇이 있다고 칩시다. 그 로봇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 동료 승무원이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봅니다. 로봇은 그 여자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로봇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그가 자살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은 그 남자의 마음도 읽고 있죠. 만약 그가 자신의 말 때문에 죽어버린다면 그것은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제 1조에 위배되는 것이죠. 그래서 로봇은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는 어서 대답을 하라고 로봇을 다그칩니다.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라는 제 2조를 생각하면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1조를 위반하게 됩니다. 화가 난 이 남자가 로봇에게 빨리 말을 안 하면 폭파시키겠노라고 협박합니다. ... 그러니 이 로봇은 스스로 자폭하는 것밖에는 수가 없습니다. 

 

여행

pg. 187

나는 이딴 일로 죽지는 않을 거야. 수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거든. 결혼식 불과 열흘 앞두고 옛 애인이 모는 차를 타고 강원도 어느 길가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로 발견될 그런 드라마틱한 운명하고는 거리가 멀어. 지금 제정신이 아닌 이 남자도 차에서 내려 바닷바람을 쐬고 나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벌였는지 새삼 깨닫고 서울로 돌아갈 거야. 그런 강심장이 아니야. 이 남자는. 내가 잘 알지, 이 어린애 같은 남자는 지금 떼를 쓰고 있는 거야. 세상을 모르는 캠퍼스의 늙은 어린이.

 

pg. 209

손님에게 언제나 친절하도록 교육받은 저 감정노동자들만 노리는 치들이 있다. 그들은 시계를 골라달라고 말하기도 하고 전에 산 걸 들고 와 바꿔달라고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정에게 말을 붙인 후에 노골적으로 치근덕거린다. 이 거머리들의 특징이 바로 뻔뻔함이다. 잘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게임에선 뻔뻔한 자들의 성공 확률이 더 높다. 뻔뻔하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드러내놓고 시작한다는 것인데 상대가 그 뻔뻔함에 호응하기만 하면 거래는 그 자리에서 성사된다. 

 


위에 로봇 164페이지 를 옮겨 적고 있다 보니, 지난번 읽은 시티픽션의 「캐빈 방정식」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고맙고 사랑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떠나야할 만큼 끔찍한 관계도 있을까.  - 캐빈방정식 중에서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제 1조에 위배되는 것이죠.
··· 그러니 이 로봇은 스스로 자폭하는 것밖에는 수가 없습니다. - 로봇 중에서

 

두 소설 속에서 의미하는 '떠나는 것'과 '자폭하는 것'은 다른 행동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끔찍함을 안겨 줄 수밖에 없지만 떠나야했고, 스스로를 자폭시켜야 하지만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딜레마라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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