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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후감]시티픽션,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by 쭈야해피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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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픽션,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한겨레출판

 


"어디 사세요?" 라는 질문은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오고가는 질문이다. 

소설가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으로 돌아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헤드카피는,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떤 모습입니까?
익숙한 도시의 낯선 단면, 그곳에 포개어진 시티 픽션의 세계 

 

좋은 이야기와 글은 좋은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당신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당신의 기분과 마음은 어떨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리고 이야기꾼들에게서는 어떤 세상과 동네를 엿볼 수 있을까? 그런 것들도 궁금했다.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몇달 뒤에 구매를 하고, 그리고 몇달 뒤에 다 읽기까지. 나는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나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책에는 7명의 (젊은) 소설가들의 중단편이 담겨있다. 

 

한국 소설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작가님들의 이름이 책의 표지에 실려있고, 책의 마지막에는 그들의 집과 관련한, 동네와 도시와 관련한 인터뷰도 담겨있다. 꽤 괜찮은 기획 소설집이다. 

 

제목에 시티 픽션이라고 넣은 만큼, 공상적인 내용들이 담겨있고, 공상과학이라고 불려도 좋을 만한 소재들도 있다. 그래서 더 신선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물론 감정이입을 하기 힘든 구석도 없지 않아 있지만, 뭐 소설이 모두 다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의 이야기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충분히 재미있고 궁금한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봄날아빠를 아세요? - 조남주

스노우 - 정용준

별일은 없고요? - 이주란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 조수경

고요한 미래 - 임현

무한의 섬 - 정지돈

캐빈 방정식 - 김초엽

 

7개의 소설 중 최애를 꼽자면,,, [스노우]와 [캐빈 방정식]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단편이 장편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너무 궁금했거든. 그래서? 그 다음엔? 왜? 왜 그랬데? 뭐 그런... 

 

가끔 이렇게 각자의 개성이 다른 작가들에게 공통의 질문을 던졌지만 전혀 다른 해석과 감상이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담은 소설집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겨레출판사에게 박수를 짝짝짝!!! 

 

오늘도 익숙한 도시에서 문득문득 낯섦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날아빠를 아세요?

pg. 22~23

한편 세훈은 유정이 삼성에 다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기도 한다. 유정이 대기업 별것 없다고 똑같은 월급쟁이일 뿐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할 때 특히 그렇다. 자신이 이렇게 번듯한 아파트를 해 오지 않았다면 열등감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을 것이다. 

 

pg. 41

영식은 전날 동아1차 관리사무소에서 보고 들었던 정보를 전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안승복은 재작년 동아1차를 매수했다. 결혼하는 딸을 위해. 그리고 동아 1차 방향의 지하철 출입구 및 서영동 소재의 공공도서관, 공원 건립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신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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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pg. 57

알겠다. 가치의 문제는 생존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는 무가치하다. 이도는 새까만 잿더미로 변한 종묘를 참담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금니를 힘주어 다물었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소리를 높여도 복구대책반 관계자들은 조금만 기다려달라, 는 형식적인 대답만 하고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늘 분주했다.

 

pg. 60

'가치?' 가치 없는 단어다. '문화유산을 계승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말이고. '영원하다고? 전통이라고? 혼? 민족의 얼?' 웃기는 소리. 차라리 그런 입에 발린 말이라도 안 했으면. 가식적인 슬픔과 껍데기 같은 말들이 가증스럽다. 이도는 속으로 생각했다.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고 이제 소중한 척하지도 않는다. 

 

pg. 73

"그 사건은 답사 내내 저를 고민에 빠트렸어요. 특히 지금처럼 역사학에 대한 관심과 가치가 떨어진 시대에 이걸 공부하겠다는 이미와 마음에 대해 생각했죠. 아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사학과 학생들은 다 느낄걸요 역사학과 다닙니다, 하면 사람들 반응이 거의 비슷해요. 아...... 하고 어색하게 웃은 다음에 아무 말도 안해요. 

 

pg. 80

하얗게 변한 정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었다. 완벽했고 완전했고 무결했다. 이도는 멍하게 입을 벌리고 서서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까닭 모를 눈물을 흘렸다. 벅차고 벅차 어찌할 수 없는 감정 속에 휘말리던 기이한 기분. 그 느낌은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고 처음으로 우주와 광대함을 감각한 어린 아이의 탄성과 슬픔 같은 것이었다.

 

 

별일은 없고요?

pg. 99

뭐야, 그게.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pg. 113

그러고 나면 그날들이 꿈인지 지금이 꿈인지 헷갈리는, 그런 순간들도 찾아오곤 한다. 잊고싶지만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잊고 싶지 않지만 잊히는, 그런 것들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게 누군가의 죽음이어도 되는 건지..... 나는 그건 좀 싫었다.

 

pg. 137

답장을 보내고 나서 한참을 휴대전화 화면만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 울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었을 때, 저 멀리 반대편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선선한 봄바람이 불었고 나는 멀리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집 몇 채와 십자가만 하나 보이는, 고요한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

pg. 181

손끝을 바라봤다. 진실과 거짓을 손끝으로 감각했다는 것. 얇은 봉투의 질감과 무게가 펴생 거짓의 감각으로 남으리라는 걸 알았다. 몸에 더러운 얼룩이 생긴 기분이었다. 주머니에 넣어둔 우편물을 꺼냈다. 하얀 봉투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렸다. 이걸 보낸 사람이 진짜 양승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의 글씨체만큼은 알 수 있었다.

 

pg. 185

온통 화염에 휩싸인 세상을 바라보며 나는 몸을 떨었다. 

피로했다. 화가 나는 것도 같았고 쓸쓸한 것도 같았다. 서글펐다. 허탈했다. 아니, 외로운 것도 같았다. 뭘까 이 감정은. 이 감정에는 대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는 걸까. 답을 찾는 대신 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차창 밖으로 핏빛 강물이 고요하게 흘러갔다. 

 

 

고요한 미래

pg. 203

현대인의 고질적인 수면장애가 우리를 이곳에 가뒀다고 생각하니 암담했다. 대신 이 밤에 아직 잠들지 않은 또 다른 누군가가 더 있을 거라는 기대도 생겼는데 그러나 우리를 발견하고 구출해줄 만한 사람은 나타날 기미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로 어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pg. 216

"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해."

"누군가 우리를 결국 그렇게 만들어버리려는 걸 수도 있잖아."

우리가 살면서 바란 것은 고작 평범한 것들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누군가 그걸 망치려한다고 아내는 의심했습니다. 그때라도 나는 아내를 말려야 했습니다. 우는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그냥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제발 이상한 상상은 그만두라며 다그치고 화를 내야 했습니다.

 

 

무한의 섬

pg. 227

물론 아빠가 사라진 건 큰일이지만...... 아빠, 그러니까 정치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나는 허공에 대고 부르짖고 싶었지만 꼴이 우스울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야.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말했다. 검머외는 동정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슬픈 건 알지만 이건 니 잘못이 아니야. 그가 말했다. 멍청아! 이건 내 잘못이 맞다고. 나는 그에게 말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pg. 230

남자는 자고로 고분고분해야 돼. 참치 엄마의 말이다. 참치는 아빠가 없고 엄마랑 둘이 산다. 형제도 없고 친척도 없고 집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사는 곳은 있지만 방 두 개짜리 월셋집이다. 참치는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실한 청소년이다. 참치가 흑화되지 않고 잘 자라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참치에게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다. 결혼하자는 걸로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참치가 원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pg. 249

변화는 계속되었다. 다음 날, 건물주가 모두 사라졌다. 30층이 넘는 빌딩의 건물주, 신축 빌라를 가진 건물주, 갓 건물을 매매한 젊은 건물주와 막 리모델링한 건물을 가진 건물주... 전 세계의 모든 건물주가 사라졌다.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었지만 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건물주가 사라지면 누가 건물의 주인이지? 배우자? 자식? 세입자들이 사이좋게 공동 분배? 건물을 가졌다가 또 사라지면 어떡하지? 사람들은 겁에 질려서 건물을 가지지 못했다. 겁이 나서 정치를 할 생각도 못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었다. 

 

 

캐빈 방정식

pg. 277

연구소에서 보험을 들어줬을까? 얼마까지 커버해줄까? 그러나 막상 병실에서 언니를 마주하자 머리를 채우던 숫자들이 사라졌다. 슬픔과 안도감이 빈자리로 흘러들었다. 언니는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았고,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옅은 미소를 띤 것 같기도 했다.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pg. 278

의사는 아주 비극적인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을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 나를 비참하게 했다. "시간시각 지연 증후군입니다. 뇌에서 시간을 인지하는 회로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각각의 감각신경들은 제대로 작동하지만 그 감각을 통합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아주 드문 경우입니다." 전달받은 사실은 간단명료했다. 놀랍게도, 언니는 평범하게 불행해진 게 아니라는 것. 언니는 아주 특별한 이유로 불행해졌다는 것. 하지만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pg. 290

언니는 고맙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고맙고 사랑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떠나야할 만큼 끔찍한 관계도 있을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pg. 309

창밖의 도시가 마침내 완전히 멈춰 선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언니와 내가 다른 풍경을 보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언니를 보내줘야 했다. 우리의 시공간이 어느 순간 완전히 분기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언니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하루의 스냅 사진들을 매달아놓은 끈이 끝에서 끝까지 걸려 있을 것이다. 그게 언니가 가진 세계였다. 언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다시 같은 시간을 점유하며 살아갈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니는 그 시간을 계속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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