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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독서감상문]오빠가 돌아왔다_뉴트로 느낌 가득한 이야기들

by 쭈야해피 2021.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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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오빠더러 탈레반이라고 욕했지만 탈레반이든 오사마 빈라덴이든 아빠보다는 낫다. 아빠는 아버지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안 갖춘, 그야말로 나쁜 아빠 종합선물세트 같은 인간이다. 내가 볼 때 좋은 부모, 아니 그냥 평범한 부모라도 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돈이다. 부모라면 최소한의 돈은 줘야 한다. 교복 살 돈, 학용품 살 돈, 군것질할 돈 같은 거 말이다. ... ...
둘째는 멀쩡한 직업이다. 이 대목에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 <오빠가 돌아왔다> 중에서 -

 

이 소설집은 2004년 '창비'에서 첫 출간되었고, 2010년부터 10년간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가, 2020년 복복서가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출간된 소설집이다. 총 8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다. 

 

- 보물선
- 이사
- 오빠가 돌아왔다
- 그림자를 판 사나이
- 너의 의미
- 마지막 손님
- 너를 사랑하고도
- 크리스마스 캐럴

 

처음 인용한 글귀에는 탈레반과 오사마 빈라덴이 등장한다. 이 명사를 듣자마자 '무지막지한 놈', '천하의 나쁜 놈' 이런 어두쿰쿰한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나와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임에 분명하다. 이 소설집에는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조금은 지나간 이야기 같지만, 그 시절 뉴스와 신문을 장식했던 친숙한 소재와 '아~ 그거?'하고 생각해 보게 되는 뜻밖의 묘한 반가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소설들을 쓸 때의 김영하 작가님은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겠다~'라는 생각도 해보고. 너무도 바쁜 하루하루를 살았던 나의 20대도 떠올려 보고,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소소한 재미들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하구나..' 하는 지점들이 많아서 놀랐다. 요즘 사람들이 레트로를 좋아하는 건, 마냥 그 시절이 좋아 보이고 그리워서가 아니고, 현재와 맞닿아있고 여전히 멋져 보이기 때문이겠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이런 구절이 등장했다. 

게다가 아직도 문학이 '방황하는 청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며 소설에서 위로를 받던, 지금은 회계사가 된 친구가 소설가가 된 친구에게 해준 말이었다.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와,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전체를 읽고 나서 나에게 남는 건 이 문장이겠구나'하는 생각. 그리고 지난해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에 나오는 기행:백석 시인의 마음들이 떠올랐다. "결국 아무런 구원이 되지 못한, 그 연약하고 순수한 말들을." 아니, 오래도록 누군가에게 닿았을 그 구원의 말들을 말이다. 

 

hearthouse.tistory.com/m/625 

 

[서평]일곱해의 마지막_시인 백석의 삶의 한 자락을 상상하다

아껴둔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 히히히히히 지난번에 오디오클립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신작소설! 일곱해의 마지막을 종이책으로 다시 읽었어요. 역시, 아직 저는 종이책

hearthouse.tistory.com

요즘은 날마다 무언가를 읽는다. 그리고 소설을 챙겨서 읽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곱씹어 본다. 생각하는 힘은 글을 읽고, 돌아보고, 생각해 보고, 그리고 또 곱씹어서 돌아보고, 이해하거나 그냥 받아들이거나, 그도저도 아니면 다시 무의식에 묻어두는 일. 그 일들을 수도 없이 반복하고 나서야 조금씩 쌓인다. 하루아침에 생기는 건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힘을 주는 일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또 오늘을 살아가는 건 어디선가 에너지가, 힘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밥이든, 책이든, 돈이든, 가족이든, 희망이든, 사소한 웃음이든 ... 스스로만이 알 수 있다.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어디로부터 오는지.

 

요즘의 나는 그렇게 흔들리는 청춘이다. 마흔(불혹이라고?)이 넘어서도 흔들리는 청춘일 거라고는 20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흔들리는 건 나이와 상관없다. 인생은 스물이든, 마흔이든, 여든이든 상관없이 힘이 들고, 힘에 겹다. 그래서 언제고 흔들릴 수 있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야기는 '방황하는 청춘들을 구원'해 줄 테니까. 

 


보물선

pg. 12

그로부터 며칠 후 러시아 공군은 몇몇 지휘관을 문책하면서 자신들이 어선 침몰에 책임이 있음을 이례적으로 시이나였다. 시베리아 기지에 잠시 들러 급유를 받던 수송기의 승무원들이 활주로 근처 농촌에서 황소를 훔쳐 그것을 적재함에 실었는데 이 소가 그만 동해 상공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바람에 화물기의 무게중심이 이쪽저쪽으로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조종사는 화물칸의 해치를 열어 소를 바다로 떨구었는데 하필 팔백 킬로그램이 넘는 그 황소가 일본 꽁치잡이 어선의 이물을 때린 것이었다. 러시아 측은 일본 어선의 피해를 모두 배상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일본 측에 조용한 처리를 요구했다. 일본 자위대의 정보수집 능력을 보여주는 이 일화를 재만에게 얘기해준 사람도 바로 형식이었다. 

 

pg. 19

하루아침에 수백억 대의 스톡옵션을 손에 쥐는 또래의 사내들을 볼 때마다 이러다 기회란 기회는 다른 놈들이 다 채가는 게 아닌가 싶어 그는 초조했다. 

 

pg. 29

바지선과 통통배에선 언제나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을 열창하는 셀린 디온의 목소리가 고물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일확천금의 꿈을 버리지 못한 투자자들은 아예 군산이나 장항에 방을 얻어 상주하며 발굴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그사이에 주가는 이미 수백 배나 상승하여 드디어 여러 기관에서 투자자들에게 조심스럽게 경고 메시지를 발하고 있었다.

 

pg. 37

"누가 아니래. 이사장도 떳떳하게 나와서 변호사 고용해서 붙으면 승산 있지, 암.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정말로 믿었다면 사기가 아니지. 참 아까워. 열정이 대단한 친구였는데......"

재만은 입맛을 잃었다. 역겨웠다. 그는 찬찬히 면면들을 둘러보았다. 저 철면피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집요하게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문제는 재만도 그들과 전적으로 같은 종자라는 데 있었다. 

 

이사

pg. 85

이사는 저희한테 맡기고 여행이나 다녀오라던 이사업체가 어디였던가도 기억해냈다. 새로운 집으로 들어서는 그의 표정을 보고 아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진수는 주워온 토기의 조각을 신문지에 싸 책상 서랍 깊은 곳에 쑤셔 넣었다. 어디선가 진한 흙냄새가 났다. 타클라마칸에서 날아온 황사에서인지 천오백 년 전의 무덤에서 끌려 나온 토기 조각에서인지 분명히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오직 분명한 한 가지는 그가 전날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잠들게 된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사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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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pg. 90

오빠는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선수처럼 아빠의 허리를 태클해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러고는 방망이를 빼앗아 사정없이 아빠를 내리쳤다. 아빠는 등짝과 엉덩이, 허벅지를 두들겨맞으며 엉금엉금 기어 간신히 자기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나쁜 자식, 지 애비를 패? 에라이, 호래자식아. 이런 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왔지만 오빠는 못 들은 체하고는 여자애를 끌고 건넌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물론 방망이는 그대로 든 채였다.

 

pg. 107-108

내가 '어디?'라고 묻지 않고 '뭐'라고 물은 이유는 '너도가자'라는 말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에선 도대체 '너도 가자' 같은 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도'라는 주격조사와 '하자'형 어미는 우리집에서 여간해서 발견되지 않는 일종의 사어라고 할 수 있었다.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pg. 120

새떼를 보고 있노라면 가끔, 아주 가끔, 뭔가 검고 어두운 것이 휙 지나간다. 너무 찰나여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잘 모르기 십상이다. 달이 해를 가리는 걸 일식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새가 해를 가리는 이런 현상은 무어라 할까. 물론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 새 그림자가 해를 가리는 일도 있다는 걸 말해두고 싶은 것이다.

 

pg. 125

"그럼 우리집으로 와." "알았어. 술은 준비하지 마."

금방 후회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두 명이나 매몰차게 돌려세울 수는 없었다. 순서가 바뀌었더라면 아마도 미경과 만나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에라 모르겠다. 컴퓨터를 껐다. 소설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pg. 137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 듣고 내 일처럼 기뻤다. 부디 좋은 작품 써서 나같이 방황하는 청춘들을 구원해주렴." 나는 그가 방황했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소설을 읽던 그 시간들이 그로서는 꽤나 힘겨운 시간이었겠거니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졌다. 게다가 아직도 문학이 '방황하는 청춘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이 새삼 감동적이었다. 편지의 말미에는 어느 나라 민요에서 따온 구절이라며 이런 글을 덧붙였다. 

 

pg. 145

"너...... 몰라?" "뭘?" "아, 몰랐구나. 그랬구나. 바보, 왜 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녀는 차장에 머리를 가볍게 부딪쳤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네가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뭐 마감? 나쁜 자식. 그게 그렇게 중요해? 이러면서 너 되게 미워하고 있었어."

 

pg. 151-152

그 생각을 하는 사이 거대한 새 그림자가 머리 위를 지나간다. 하늘을 본다. 이상하다. 달도 없는 밤에 웬 새 그림자. 몸이 다시 움츠러든다. 덕분에 쓸데없는 상상은 끝. 나는 옷만 벗어던지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운다. 

 

너의 의미

pg. 160

어쩔 수 없다. 그게 내 본질이다. 이제부터는 작업이다. 슬슬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영화 일은 너무 힘들다. 소재는 고갈되고 재능 있는 작가도 없고, 정말 힘들다. 여자는 안절부절, 미안해하고 있다. 앉아 있기가 이젠 좀 고통스런 모양이다. 그럼 내가 구원을 해줘야지.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불쌍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이봐요. 그 일은 잊어버리고요 아래 바에서 술이나 한잔하지요. 그 순간의 내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야 한다. 설마 그것마저 거절하지는 않겠지, 라고. 

 

pg. 172

저 여자가 날 사랑한다는 건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건 안 되는 거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여자와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전혀 없다. 그 시나리오가 잘되겠는가 나의 모든 의사표시는 사랑의 맥락에서만 해석될 것이다.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그녀는 울겠지? 시나리오의 어떤 점이 좋다고 하면 그걸 확대 해석해서 하루 종일 행복해하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번 영화로 입봉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충무로에서 내게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써줄 사람은 저 조윤숙밖에는 없다. 오직 그녀만이 아직 내 정체를 모르고 있다. 

 

너를 사랑하고도

pg. 207

"인숙아, 옷 입고 만나니까 정말 몰라보겠구나." 아버지는 늘 인사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셨다. 인사만 잘해도 밥은 안 굶는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인사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 인사에는 진실이 필요 없다는 걸 곧잘 까먹는 것이다. 인숙의 입가가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갔다. "누가 들으면 우리가 되게 친한 줄 알겠다." "미안해. 예쁘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는데."

 

pg. 217

둘은 그 후로 가까이 지냈다. 가난이 그의 후광이었다 그가 군대에 다녀오고 사회단체와 운동단체 몇 군데를 거친 후, 둘은 결혼했다. 그때에도 장모는 그를 미친놈이라 불렀다. 당시엔 야당이었던 고향의 지역구 의원이 주례를 섰고 그의 동지들도 대거 참석했다. 결혼식장에 온 그들은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이란 운동가요를 축가로 불렀다. 그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되어 끝까지 '함께' 간 이는 주례와 신랑밖에 없었다. 

 

pg. 222

"새해가 되면 담배 끊는 사람들처럼 이제 묵은 관계는 청산하시고 새사람이 되시겠다?" "미안해. 난 입만 열면 개구리가 나와." 잘 먹고 잘살라는 말도 못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정말 머릿속에 개구리가 한 바구니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캐럴

pg. 253

지숙은 고개를 저었다. 니들은, 내가 바보였다고 생각하지. 그래 맞아. 난 바보였어. 그치만 그러는 니들은 어땠는 줄 알아? 이십대 초반의 너희들은,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어차피 지나간 얘기잖아, 그래, 음, 똥 마려운 강아지들 같았어. 너희들은 남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었어. 욕망에 허덕대는 스스로를 혐오하느라 다른 누군가를 동정하고 자시고 할 여력도 없었지. 개폼을 잡고 내 자취방에 기어들어와 십 분 만에 사정하고 도둑놈들처럼 기어나가면서 자기들이 무슨 게릴라나 된 줄들 알고 있었지. 알았으니까 그만해라. 잘못했다. 영수가 진숙의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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