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소년이 온다_ 모두가 꼭 읽어야할 책

by 쭈야해피 2020. 4. 14.
728x90
반응형

책을 한장 한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힘들었고, 넘기려니 너무 두려웠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계속 나와서 미루고 싶었다.

마지막 섹션 두 곳에서는 이미 포기한 퉁퉁부은 눈두덩이와 흘러내린 눈물 콧물과 책상에 쌓인 휴지조각들이 ... 나의 상태를 보여줬다.

아침부터 엉엉엉 울어버렸고, 제일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는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오그라든채 굳어버렸다.

소설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가슴터질듯이 오열하게 될줄은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도 아니고, 소설책인데...

 

너무 생생해서 어디까지가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현실은 이것보다 더 심하고 심했을텐데.. 라고 생각하면 책장 열장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리기가 일수였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눈을 가리고 회피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이 1980년에 일어났다는 것을,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부끄러웠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처참하고 무참하고 무시무시하게 ... 불과 40년 전에 내가 태어난던 그 해에... 전쟁과도 같은 그날들을 겪었냈다는 것이, 그리고 오늘에는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헐뜯게 만들었다는 것이 ... 누구의 잘못이냐고 묻지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 ... 아무도 아무도 제대로 배워본적이 돌아본적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그리고 가슴이 아프고 아파서, 그냥 몇시간 울었을 뿐인데... 온몸이 아파왔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부끄러웠다. 그 단어밖에 쓰지 못하는 것도 부끄럽다.

 

아는 동생이 추천해 줘서 읽은 책이다. 아마 그 동생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유는 한강 작가님의 소설은 너무 어둡고 아프고 어렵고 ... 그래서 .. 사실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지않아도 어둡고도 아픈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니까. 그런데 이 책은 많이 많이 널리 널리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한번이라도 울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없을 것만 같다. ... ...

 

소년들이 왔다. 그리고 그 소년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 소년들일까... 혹시 그들일까... 하는 그 무엇이 온다. 아니 기다린다 오기를... 기다렸다라고 쓰기에는 아직도 생생한 고통이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장면 전환이 생생하다. 수많은 자료들을 보고 듣고 파헤치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한강 작가님은 느꼈을 것 같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 숱한 과정들 후에 정돈된 글로 몇자 에필에 적었겠지? ... 책장을 한장 넘기기 힘들어서 두고 두고 두고 읽은 나인데... 이런 글을 써낸 그 작가의 고통은 ..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써야만 해서,,, 써야만 해서,,, 두고 두고 숙제처럼 마음을 괴롭혔을 것이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누구보다 잘 써주셨다고 말하고 싶다.

 

소년의 가족이 당부했듯이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꼭 읽어봐야만 하는 책, 소년이 온다.

당신이 진보이든 보수이든 젊든 늙든 책을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아무 이유없이 읽어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1장 어린새

 

pg. 45

달아났을 거다,라고 이를 악물며 너는 생각한다. 그때 쓰러진 게 정대가 아니라 이 여자였다 해도 너는 달아났을 거다. 형들이었다 해도, 아버지였다 해도, 엄마였다 해도 달아났을 거다.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3장 일곱개의 뺨

pg. 85

모두가 그녀에게 귀엽게 생겼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눈 코 입이 조금씩 튀어나온 게 밉지 않고 귀엽구나, 머리는 꼭 흑인 댄서 같구나, 미용실에서 파마 안해도 되겠다야. 그러나 열아홉살의 여름이 지나자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스물네살이고 사람들은 그녀가 사랑스럽기를 기대했다. 사과처럼 볼이 붉기를, 반짝이는 삶의 기쁨이 예쁘장한 볼우물에 고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은 빨리 늙기를 원했다. 빌어먹을 생명이 너무 길게 이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pg. 100

당신이 죽은 뒤 장례를 치르지 못해,

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pg. 102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야초 불꽃들이.

 

뜨거운 고름 같은 눈물을 닦지 않은 채 그녀는 눈을 부릅뜬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소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4장 쇠와 피

 

pg. 105

모나미 검정 볼펜은, 조사실에 들어가면 변함없이 준비되어 있는 첫 순서였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일단 분명히 해 두려는 것 같았습니다. 내 삶의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허용되는 건 오직 미칠 듯한 통증, 오줌똥을 지리도록 끔찍한 통증뿐이라는 것을.

 

pg. 108

아니요, 나도 잠을 못 잡니다. 하루도 깊이 못 잡니다. 숨이 붙어 있는 한 계속 그럴 겁니다.

선생이 나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김진수에 대해 물은 뒤 생각했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어온 선생과 이곳에서 만날 약속을 잡은 뒤에도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왜 그는 죽었고, 아직 나는 살아 있는지.

 

pg. 120

두살 많은 외사촌형을 따라 시민군에 들어갔는데, 형은 마지막 새벽 YMCA에서 죽고 혼자 잡혀왔다고 했습니다. 카, 카스테라가 제, 제, 제일 머, 먹고 싶어요. 사, 사이다하고 가, 같이. 외사촌이 죽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는,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대답했습니다. 눈을 문지르지 않는 그 아이의 왼 주먹, 꽉 움겨쥔 그 손가락들 사이에 약솜이 끼워져 있는 것을 나는 묵묵히 바라봤습니다.

 

pg. 124

주섬주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동안, 우리의 눈길은 투명한 촉수처럼 조용히 서로에게 뻗어나가 얼굴 안쪽의 그늘을, 대화와 헛웃음으로 덮이지 않는 고통의 흔적을 어루만져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가족의 신세를 지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김진수는 매형의 전파사 일을 돕고 있었고, 나는 큰택에서 하는 한식당 일을 돕다가 얼마전에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연말까지 쉬다가 해가 바뀌면 택시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돈을 모아 언젠가 개인택시를 하겠다고 내가 말하자 그는 덤덤하게 대꾸했습니다.

 

pg. 126

하루하루의 불면과 악몽, 하루하루의 진통제와 수면유도제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 젊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누구도 우리를 위해 염려하거나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조차 우리를 경멸했습니다. 우리들의 몸속에 그 여름의 조사실이 있었습니다. 검정색 모나미 볼펜이 있었습니다. 하얗게 드러난 손가락뼈가 있었습니다. 흐느끼며 애원하고 구걸하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5장 밤의 눈동자

 

pg. 164

...... 사방에 흩어진 우리 신발을, 정미가 전부 모아서 노조 사무실에 갖다놨대. 쪼그만 게 그렇게 서럽게 울더란다.

연행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 벗겨진 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을 것이다. 열여섯살 난 그 애는 무엇이 자신을 울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신들을 가슴에 안고 이층 노조 사무실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빈방으로 걸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날 오후 회진을 온 말쑥한 얼굴의 의사와 레지던트와 인턴들을 당신은 유심히 올려다봤다. 그애는 그들 같은 의사가 될 수 없다고 그때 생각했다. 동생을 대학 졸업시키면 이십대 중반이 될 것이고, 그때부터 중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해도...

 

pg. 167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pg. 170

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은 날마다 당신을 조사실 탁자에 눕혔다. 더러운 빨갱이년. 아무리 소리 질러봐라, 누가 달려오나. 조사실의 조명은 가늘게 떨리는 형광등이었다. 일상적인 그 환한 조명 아래, 당신이 하혈 끝에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pg. 173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 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pg. 174

다만 이따금 당신은 생각한다.

한낮, 유난히 고요한 휴일 오후 해가 드는 창을 보다가 문득 동호의 옆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를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게 혼은 아닐까.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뺨이 젖어 있는 새벽 그 얼굴의 윤곽이 별안간 선명해질 때, 혼이 머뭇거리며 거기 있는 것 아닐까.

 

pg. 176-177

내가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김밥을 나눠 먹고 일어서면서 그렇게 당부했다면 너는 남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나에게 오곤 하는 거야?

왜 아직 내가 살아 있는지 물으려고.

예리한 것으로 거푸 그어 붉은 선이 그어진 것 같은 눈으로 당신은 걷는다. 응급실의 불빛을 향해 빠르게 나아간다.

 

아니,

언니를 만나 할 말은 하나뿐이야.

허락된다면.

부디 허락된다면.

 

... ...

 

죽지 마.

죽지 말아요.

 

 

6장 꽃 핀 쪽으로

 

pg. 183

형이 뭘 안다고...... 서울에 있었음스로...... 형이 뭘 안다고...... 그때 상황을 뭘 안다고오.

둘이 그 꼴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말릴 생각도 못하고 나는 부엌으로 돌아왔다이.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맨이로 전을 부치고 산적을 꿰고 탕을 끓였다이.

인자는 암것도 모르겄어야.

 

pg. 187

가끔은 말이다이, 내가 뭣한다고 문간채에다 사람을 들였을까...... 생각한다이. 그까짓 사글세 몇푼 받겄다고...... 정대가 이 집으로 안 들어왔으먼 네가 정대 찾는다고 그리 애를 쓰지 않았을 것인디...... 그라다가 느이 둘이 배드민턴 침스로 웃던 소리가 생각나먼, 죄 받제...... 죄 받아, 그람스로 고개를 흔들어야. 그라제, 내가 그 불쌍한 남매를 원망하먼 큰 죄를 받제.

 

pg. 191

온나, 이리 온나, 손뼉 치는 내 앞으로 한발 두발 걸음마를 떼었는디. 웃음을 물고 일곱걸음을 걸어 나헌테 안겼는디.

여덟살 묵었을 때 네가 그랬는디. 난 여름은 싫지만 여름밤이 좋아. 암것도 아닌 그 말이 듣기 좋아서 나는 네가 시인이 될라는가, 속으로 생각했는디.

 

 

에필로그 눈 덮인 램프

 

pg. 211

사실 고민했습니다. 나는 할 말도 없는데 만나면 뭐하나. 그러다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니까.

그럼요, 어머니가 계셨다면 망설이지 않고 만났을 겁니다. 놔주지도 않고 끝없이 동호 이야기를 했겠죠. 삼십년 동안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쓴 감상문, 페이지 마다 표시해 둔 글귀들, 그 사이사이 무수한 아픔들, 나는 오늘 아침에도 눈물과 콧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