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때 그시절(memories of the period)/샌디에고(SD) Story

김작가 드디어 미쿡으로 가다

by 쭈야해피 2009. 9. 19.
728x90
반응형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인후에, 그냥, 가벼운 일상이야기를 적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샌디에고에 도착한지 11일째,
어느정도 시차적응도 됐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어느정도 자고, 운동도 하고 하니...
이제는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뭘하며 살아갈지 등
아주 소소한 일상들을 기록해야 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을 하게 됐다.

사실, 마냥 쉬고, 놀고, 자고 싶은 요즘이다.
아마도 고민이 많기 때문이겠지만,,,
더이상 미루다가는 기억력의 한계가 점점 드러나고 있는 나이라...;; 각설하고~

-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타입이다.
물론, 여름이 생일이기도 하거니와,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벚꽃이 가장(?) 먼저피는 곳)
가족들의 생활타입, 유전적 영향 여타 등등
그래서 예전부터 여름만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과 말을 계속 해왔던 터이다.

-
그런데, 세계지리를 열심히(?) 공부하던 고등학교 시절,
우리반에 미쿡에서 건너온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나의 고향은 해군도시인데, 그 친구의 아버지가 군인이라, 미국에서 몇년간(?) 거주하다가,
임기가 끝나서 다시 고향(?)으로 건너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미쿡, 마이애미에서 왔다는데~ 그곳이 1년 내내 여름만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런~ 놀라워라~'0'

아니~ 글쎄, 여름만 있는 나라는 다들 후진국(?)이라서,
그 곳에 가면 어찌 생활을 하나... 이런 등등의 고민을 하고 있는 내게,
"오~ 빅! 뉴스~" 그래서... 이 다음에 크면, 부강하고 안전한 나라 미쿡에서도
따뜻한 마이애미나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는 곳으로 건너가야 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 것이다. ('김작가 미쿡가다'의 이야기 기원은 말이다.;;) 

-
그렇게 17살 소녀의 바람은 13년이 흐르고 흘러서야 이루어진다.
그 당시 내 친구들 부터, 그 이후로의 내 친구들 까지,
내게서 미쿡이나 지중해에 갈 거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은 친구가 있을까??
그런 친구가 있다면, 아마도, 그녀 혹은 그녀석은
나와 별로 친하지 않은 것이었을 듯... "0" 

뭐, 여튼, 지나고 나서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나 오래 걸릴 줄은 그땐 몰랐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하고 난 후에, 한국에 돌아가게 되는 날이 오면,
아.... 그것 또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에이~ 살러간다더니... 돌아왔니?' ...이런 이야기 들을까봐...
그래도 뭐, 내가 언제 남의 이야기에 신경 쓰고만 사는 사람은 아니니까...;;

-
그런데 그 13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
그것이 또 중요하다.
나의 15살 꿈은 방송국 PD가 되는 것이었다. 
그 당시, 겨울이면 했던 <MBC,  사랑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라는 프로그램을
너무 너무 감명깊게 본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오로지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방송국 피디가 되는 것이었는데,
자라면서 꿈은 조금씩 조금씩 더 커졌다.
그래서 어느순간 나의 꿈은 방송국 사장이 되었다. $o$
'오! 마이 갓~' CEO... 누군가는 가당치 않은 소리라고 했겠지만, 난 잘도 떠들고 다녔다.

여튼, 고 3 이 되어 수학능력평가를 치렀고, 성적은 평소보다 떨어지게 나왔어도,
나는 신문방송학과를 골라서 진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되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졸업 후, 방송국 언저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방송국의 환경이 그동안 많이 변화되었지만, 그리고 PD가 아닌 작가가 되었지만,
나의 꿈은 하나씩 진화되었고, 누가 뭐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 그 치열한 방송현장에서 밤도 새고, 밥도 먹고, 욕도 하며,
돈을 벌고, 친구도 사귀고, 일도 하고, 프로필도 늘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S본부에서 근무를 하던 중,
나는 방송국도 ... 여느 다른 기업과 공기업 기타 등등과 다름 없다는
변하지 않는 그 현실과 진실(?)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젠장! 그 허망함이라니...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해도, 언제 성공할지 눈앞이 막막해도,
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방송국 사장이 될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ㅜ.,ㅜ

-
그리고 나는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끝날 것 같았던, 자아성찰은 여전히 끝나있지 않았다.
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이며, 나는 어떤 일을 할때 가장 행복한가? 등등
또 다시 앞으로의 나의 삶에 대해 마치 질풍노도의 시기인것 처럼
고민과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말하고 나면, 멋진 단어가 되는) 터닝포인트라는 것인가???
여튼, 그즈음 난 먼 북소리를 따라 떠나야 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까지는 반년이 넘게 걸렸다.

1. 살던 집을 정리하고, 통장잔고를 만들어야 한다.
- 이것이 보통일이 아니다. 집과 가구, 그동안 축척된 짐 등 어마어마하다

2. 떠나야 함에도 돈을 벌어야 한다. 모든 직장인들이 알듯이
 일을 하면서 또다른 무엇가를 준비한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 잠잘시간도 없는데...;
- 비행기 표 값이라도 벌어야 하거니와 남의 돈을 버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3. 내가 갈 곳에 대한 사전 정보와 학교, 거주지, 비자발급 등 떠날 준비
- 이것이 상당히 까다롭다. 그래서 이건 다음에 더 자세히 한 챕터를 만들 생각이다.

4.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에게 내가 왜 떠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 가족이외에도 만날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 그들은 왜 외국으로 떠나는지 모른다.
  물론 가족들은 더더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해를 받고 떠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채 떠나버리는 것은 상당히 기분이 다르다.
  막상 진짜로 떠난다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결심으로 가는지...
  말을 해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여튼, 이건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 같다. ;;

--
여튼, 여차저차 세월이 흐르고 흘러,,,  
2009년 9월 8일 김작가는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미쿡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에 있다. 그 후에? ...
그건 앞으로 이 글들이 진행되는 한 아마도 여기에 있겠지...
나도 궁금하다.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 될 지....... 매우 많이...

in San Diego airport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