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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멈추고 뒤돌아 볼 때_리스본행 야간열차

by 쭈야해피 2017.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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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귀에 익은 제목의 책들 중의 하나였다. 들녁(출판사)에서 선정한 '세계문학의 천재들 001'에 해당하는 만큼 현대 세계문학 중 1번에 손 꼽힐 정도의 플롯과 문장력, 사색으로의 초대 등 무엇하나 빠짐없이 대단한 소설이었다. 


2개월에 걸쳐서 읽게 된 또 한 권의 책. 요즘만 같아서는 한달에 10권의 책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은데도, 무척 바빴던 12월과 무척 한가롭지만 마음이 부산했던 1월에 걸쳐서 드디어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고전과 문학전집이라 불리는 이야기들은 그렇게 언제고 장마다, 문장마다 사소한 생각들과 어울리지 않는 상상까지 끌어다 놓고 붙잡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항상 말해왔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글과 이야기는 대단한 것 같다. 시간이 돈이고 금인 시대에 스스로 시간과 열심을 기울여 읽고 생각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언을 만들어낸 이유일 것이다. 


평생을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패턴으로 살아온 고등학교 라틴어 교사의 삶을 뒤 흔들어 놓는 순간. 누구에게나 인생을 뒤흔드는 순간이 어느날 불현듯 찾아 올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를 두고는 그 누구라도 흔들리는 순간을 붙잡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의 동료도, 상사도, 학생도, 이웃도, 하물며 수많은 날동안 그를 돌봐온 친구이자 의사조차도. 어쩌면 그 자신 조차도 꿈을 걷는 듯, 뿌연 안개 속을 나아가는듯 그렇게 현실감 없는 선택을 하는 자신에게 계속 의문을 품으며 살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선택들을 행동으로 옮겼을 것이다.


pg. 44.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델리우스 [명상록] 중에-


사람들은 하루를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산다. 

그렇게 자신의 선택이 삶의 모양을 만들고 그 사람의 인생을 구분하고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게도 한다. 그 만큼 반복된 선택은 자의든 타의든 실수이든 계획적이든 인생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만약에... 그때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이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지점에 섰을 때 우리는 그것이 후회의 모습이든, 혹은 일탈을 꿈꾸는 순간이든, 다른 선택에 대한 갈망과 유혹이든 삶의 한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리스본행 열차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는 이야기이다. 왜 멈춰섰는지 왜 돌발행동을 했는지 그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 다시 돌이켜 돌아가야할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을 놓치 않고 끝까지 다 읽게 만드는 힘이었다. 마치 추리소설의 결말을 기대하듯이 주인공과 주인공이 추리에 마지않는 프라두의 삶의 끝을 찾아가는 이야기. 어떤 과감한 사건이나 반전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그 시대 그 장소 그 거리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끝없는 상상을 일으켜주는 거대한 생각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밀어내는 힘. 그것이 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1분 동안 멍을 때리다가도 카톡이 울리면 휴대폰을 쳐다보고, 잠시잠깐 어제 무슨 생각을 했더라 돌이켜볼 때 이메일이 도착하고, 해야할 일들을 끊임없이 쏘아대는 알람소리에 그 생각이라는 놈은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져 저 만치 멀리 던져버리는 요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사유의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소설은 생각이 사치라고 느껴지는 이 빠름의 시대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날 갑자기 빠름이 아닌, 멈춤을 요구하는 그 날이 우리의 인생에 닥쳤을때. 뒤를 돌아보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만약에...' 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었는지 스스로에게 타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여 모든 것이 허무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면. 어마어마한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행동을 선택할지, 거대한 소용돌이를 빠져나올 방법은 찾을 수 있을지,,, 우리에게 그런 잠재된 힘이 미약하게나마 존재하고 있을지... 이 모든 질문은 애초에 없었지만, 늘 숨어있으며 언제 형태를 갖추고 그 모습을 드러낼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 책은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추리나 스릴러영화의 끝에 도달했을 때처럼 사건을 해결하거나, 범인을 밝혀주거나, 그래서 어떻게 된거야라는 결말에 이르지는 않는다. 이유는 생각의 추리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수도 없는 결과를 놓치만 그것을 선택해서 행동으로 옮기고 삶으로 결실을 맺어야지만 한 가지의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고, 생각이 꼬리를 무는 그 동안에는 그 어떤 것도 결말에 이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생각 속으로의 여행은 때론 즐겁지만 때론 허무에 이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즐겁고도 허무한 여정에 끝없이 오르고 내리는 이유는 언젠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길에 이르렀을 때 수없이 반복한 생각의 여정 속에서 스스로가 원하는 삶은 어떤 모양인지를 새기고 새겨서 실상으로 이루어내는 힘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생각없이 선택한 모든 행동은 결국 또 다른 선택을 놓고 그로 인한 또 다른 삶의의 모습은 돌고 돌아 어느 날 자신에게 반드시 질문을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만약에...'


pg. 202

아마데우는 천박한 허영심을 대하면 잔인해졌소. 아주 심하게.......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드는 듯했지. '천박한 허영심은 우둔함의 다른 형태죠.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주 전체로 봤을때 얼마나 무의미한지 몰라야 천박한 허영심에 삐질 수 있어요. 그건 어리석음이 조야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 그는 늘 이렇게 말했소. 


pg. 279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 ...

사람들은 침묵을 견디지 못한다. 프라두의 짧은 글 가운데 하나였다. 스스로를 견디어야 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될 테니까. 

 


pg. 443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레고리우스가 그의 글을 인용했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pg. 536

'당신, 너무 허기졌어요. 당신과 함께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지만, 당신은 너무 허기졌어요. 그 여행은 할 수 없어요. 그건 당신의 여행, 오로지 당신 혼자만의 여행이에요. 우리의 여행이 될 수 없어요.' 그녀가 옳았다. 타인을 자기 삶의 건축용 석재로, 자기 구원의 경주를 위한 일벌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pg. 537

...

완전함? 에스파냐 사람들은 '에스페히스모(Espejismo)'라고 한다. 그때 읽은 신문에서 유일하게 아직 기억하는 단어. 신기루, 환영(幻影).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랆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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