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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끝없는 질문을 던져주는 책 - 그리스인 조르바

by 쭈야해피 201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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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2-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 문학의 구도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그리스인 조...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두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읽은 책이다. 뭔가 너무 재밌는데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고전은 고전이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존경받을 수 있는 '조르바'!! 그에게 위대한 그리스인 조르바 라고 칭하고 싶은 마음이다.

더욱이 이곳저곳 이일 저일 이리저리 얽매여 살아가는 나에게 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는 환상이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과연, 나는 저렇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이렇게도 자유롭고 호탕하게 살 수 있을까? .. 그런 생각. 그리고 그가 실존 인물이었다니... 대단하다. 그렇게 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pg 22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수도 없이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하고 다시 떠나기를 반복했다는 조르바가 밉살스러우면서도, 약한 여자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그가 수도 없는 여자들을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는 것 만으로 그 여자들이 다 용서했다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잘 찾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진정한 카사노바는 그냥 그런 바람둥이가 아니다. 진심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하하...

 

그런 그의 자유론, 사랑론, 신앙론, 인생론, 세계관 등등 구구절절 고개 끄덕일 수 밖에 없없다. 그의 이야기에 푸욱 빠져든 채 읽었는데... 왜 책 한 권 읽는데 두 달이나 걸렸을까? ...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이 내 속에 요동쳤기 때문이겠지...

 

pg 36

...... 참 신기한 일입니다. 신기해도 예사로 신기한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 치고 해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말이 났으니까 말이지, 내가 죽이고 사기 친 이야기를 한다면 두목, 아마 머리털 끝이 송두리째 곤두설 겁니다. 그런데도 그 결과 웃겨. 자유라니! 우리 같은 것들에게 벼락을 내리지 않고 자유를 주신 하느님이라니.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 두목은 이해할 수 있겠어요? / 그가 괴로운 듯이 내게 물었다.

 

 

pg 38-39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 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 버리다니......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 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pg 89

...... 내 가진 것 모두 애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 우리는 가난뱅이, 그렇지, 가난뱅이가 된 거예요. 그렇지만 불평은 안 해. 필요한 건 하느님께서 다 가지고 계시니까!

 

암요, 필요한 건 하느님이 다 가지고 계시겠지요. 그렇지만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 늙은 자린고비가 글쎄, 우리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잖아요!

 

에끼! 이 양반! 하느님을 탓하지 마소! 그 불쌍한 늙은이가 우리만 믿고 있는 걸 아시면서 그러네! 

 

나는 조르바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지독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찌나 씽긋 웃었는지 모른다. 소설 속 조르바도 그리고 그의 두목 화자도 늘 신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지만 늘 신을 갈구하고 있다. 아마도 작가의 그 끝없는 번뇌와 질문 속에 늘... 신을 찾고 있었라 생각한다.

 

 

pg 92-93

...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뜨여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비참해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낡은 세계는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그 세계는 존재한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다.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이다. 보랏빛 바람(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에 둘러싸인 구름......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pg 295

...... 나의 두 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즉, 진정한 영향력을 가진 모든 사상은 실재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이론이오. 이것은 저기에 실제로 존재하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기 속을 떠다니는 게 아니고(실체가 있소) 눈과 입과 다리나 위장이 있는 실체라는 것이오. 이 실체가 바로 암컷과 수컷이며 이들이 서로를 원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오. 복음서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오.

 

나의 세번째 이론은....../ 그는 내 침묵을 참을수 없었던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 이러하오. 우리의 덧없는 삶속에도 영원이 있다는 것이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뜷어 볼 수 없다는 것이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매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 주신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합지중도 영원을 살 수 있게 된 거지요.

 

pg 329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pg 338

이것 봐요!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났어요! 오, 내가 당신만큼 젊었더라면! 어디든 한번 이 대가리를 처넣어 볼 겁니다. 일, 포도주, 사랑, 뭐든 말이오. 나 같으면 하느님도 악마도 두렵지 않을 겁니다. 젊음이란 건 그런 겁니다.

 

pg 340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나는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르바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 나는 조르바의 말을 되풀이함으로써 나 자신을 격려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나 역시 조르바가 부럽다. 그리고 젊음을 허비해버린 것만 같은 화자처럼 부끄럽고 소극적인 처지이다.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판단해 버리는 나 같은 부류의 인간에게 끊임없이 행동하라고 부추기는 고마운 조르바다.

 

pg 386-387

나는 신성한 경외감의 의미를 이해시켜 보려 했다./

조르바, 우리는 구더기랍니다. 엄청나게 큰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에 붙은 아주 작은 구더기지요. 이 조그만 잎이 바로 지굽니다. 다른 잎은 밤이면 가슴 설레며 바라보는 별입니다. 우리는 이 조그만 잎 위에서 우리 길을 조심스럽게 시험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잎의 냄새를 맡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알아보려고 우리는 맛을 보고 먹을 만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잎의 위를 두드려 봅니다. 잎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냅니다.

어떤 사람은(겁이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잎 가장자리까지 이릅니다. 거기에서 고개를 빼고 카오스를 내려다봅니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떱니다. 밑바닥의 나락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게 되지요. 멀리서 우리는 거대한 나무의 다른 잎들이 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뿌리에서 우리 잎으로 수액을 빨아올리는 걸 감지합니다. 우리 가슴이 부풀지요. 끔직한 나락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는 몸도 마음도 공포로 떨고 맙니다.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

나는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그 순간에 시작되는 게 바로 시(詩)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르바가 알아들을 것 같지 않아 말을 끊어 버린 것이었다.

 

pg 390

두목, 나는 말이지요,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고통이 심장을 찢어 놓은 듯하답니다. / 그는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 하지만 내 심장이란 게 이미 구멍이 숭숭 뚫리고 상처투성이가 된 지 오랩니다. 이번에도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었으니 상처 자국이 새삼스럽게 보이지는 않는 거지요. 내 몸은 상처가 아문 자리투성이지요. 그래서 내가 제법 잘 견디어 내는지 모릅니다.

 

 

이 책은 후반부로 갈수록 조르바에서 화자 자신의 내면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수 차례의 죽음 중에, 비수를 꽂은 4차례의 죽음과 이별, 실패를 통한 성숙의 과정도 포함하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평생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이별과 결국 다시는 이생에서 만나지 못할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의미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왜 그리워 하면서도 아니 만나고 사는가?

끝없는 질문을 던져주었던 책이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많은 질문을 돌릴 수 있는 글은 참 고맙고도 대단한 글이다.  

pg 417

나는 새벽에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뛰고 있었다. 내 생애 그 같은 기쁨은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예사 기쁨이 아닌, 숭고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것과 극을 이루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돈,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pg 424

... ...

만사는 정해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험한 길, 선상한 길을 따르다 안전하고 단순한 법칙에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로부터의 공격이 차단된 하찮은 확신의 테두리 안에서 지네처럼 꼼지락거리다 보면 아무 도전도 받을 수 없다. 숙명적인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강력한 적은 오직 하나, 터무니없는 확신뿐이다. 확신은 내 경험의 벽을 허물고 내 영혼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해변에 이른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제2방어선에 도달한 것 같아 나는 자신을 가다듬었다. 나는, 이 모든 메시지는 우리의 내적 불안에서 생긴 것이고 우리의 잠은 상징의 화려한 의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상징을 산출하는데 어쩌랴...... 나는 차츰 마음의 평정을 회복했다. 이성은 내 심장에 질서 회복을 명하면서 박쥐의 날개를 자르고 잘라 더 이상은 날 수 없게 했다.

 

생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자신의 묘비명을 남겨 놓았다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롭게 사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이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지만, 또한 신에 의해 간섭받고 싶은 인간이다. 그런 내게 수 많은 생각을 안겨준 이 책이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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