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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다음] 홍정욱 "'성공하기 위한 기계' 같았다"
강인선 Live 하버드 졸업… 언론사 회장, 그리고 국회 진출 홍정욱이 말하는 '나의 인생'
4·9 총선 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홍정욱 (38) 전 헤럴드 미디어 회장은 좀 꼬질꼬질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살도 빠진 듯했다. 선거 사무실은 어수선하고 어설펐다. 선거 20일 전 전략공천이란 명분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서울 노원 병)에 투입돼 후닥닥 선거를 치른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홍 당선자는 15년 전 하버드 수석 졸업 논란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소동으로 사람들은 하버드엔 수석 졸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그가 쓴 미국 유학기 '7막7장'이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홍정욱은 '연예인급 유명인사'가 됐다. 영화배우 아버지 남궁원(74·본명 홍경일)을 빼닮은 외모도 한몫 했다.
홍정욱은 '조기유학, 강남, 하버드, 명문, 성공'을 상징했다. 그에 대해 중립적인 사람은 드물었다. 아주 좋다거나 너무 싫다고 했다. 그가 총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에 바로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와 '결국 국회의원 하자는 것이었나'였다. 총선 일주일 후 유리창에 시퍼런 비닐종이를 발라 가까스로 햇볕을 가린 사무실에서 홍 당선자와 마주 앉았다.
―선거를 해보니 어떻던가요?
"힘들었어요. 네거티브 선거전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상대방이 만든 '귀족 대(對) 서민'의 구도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어요. 승리한 후에도 일부 언론은 이 결과를 저의 승리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당선된 것을 이 지역 주민의 선택이 아니라 진보의 몰락으로 보더라고요. 피도 눈물도 없는 실용주의적 귀족주의의 승리라고 하더군요. 감당하기 벅찬 분석과 반응이지요."
―주변에서 " 홍정욱 이 무얼 했다고 국회의원이 됐느냐"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왜 그럴까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당선 확정 후 제가 환호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마치 '성공하기 위한 기계' 같은 모습이었어요. 선거에 나간 사람 치고 '승리를 확신한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도 제가 그 말을 하면 확신이 줄줄 배어 나와요. 그걸 보면 사람들이 '저놈이 한번 거꾸러지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사실은 저도 떨었고 괴로워했어요."
―'빠다 냄새'도 거부감의 중요한 이유인 것 같던데요.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해요. 생긴 게 그렇다는 건가요? 말투가? 사고가 서구적이란 거예요? 아니면 느끼하다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요."
―전부 다 포함된 뜻일 겁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거야 미국서 17년을 살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여자들에게 느끼하게 치근덕거린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미국 사람 같다는 거지요. '7막7장'에서 유학시절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려고 너무 애썼던 이야기 같은 걸 보면 좀 불편해지거든요.
"그때 저에겐 그게 중요했어요. 미국 사립학교란 닫힌 공간에서 동양 아이들은 끼워주지도 않았어요. 미국서 공부 다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미국의 교육뿐 아니라 전통과 관습까지도 다 익혀서 주류로 살다 떠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어요."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이용해주겠다'는 태도가 얄밉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7막7장'은 스물세 살 때 썼어요. 사람들이 스물세 살 때 자신이 쓴 일기장을 한번 들춰 봤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에 가장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쓴 책이니까 지금 보면 당연히 유치하지요."
―책이야 그렇다 치고, 요즘도 홍정욱이 말하는 건 어쩐지 다 꾸며낸 이야기 같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걸 계산해서 말하는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7막7장'이란 책 제목 때문인 것 같아요. 인생을 그렇게 7단계로 나눠 한 단계씩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지요. 거기서 7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완벽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제목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이지 단계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 되겠다'고 했지요. 그건 '그냥 일 잘하는 정치인'을 넘어서겠다는 뜻이지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매일 그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국민들이 희망과 긍정을 느낍니까? 희망을 심어주는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리더십은 비전에서 시작해 성과로 끝납니다."
―2003년에 했던 한 인터뷰를 보니, 언론·출판·교육 사업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던데, 그것 역시 정치인으로 가는 발판에 불과했던 것인가요?
"그건 진짜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미디어 경영자로서 앞으로 30년 정도 더 일하면 언론계에 한 축을 세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걸 다 던질까 말까를 두고 6개월 정도 고민했어요."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뭡니까?
"작년에 회사가 안정되면서 경영에 대한 권태를 느꼈습니다."
―언론사 경영 5~6년 하고 나니까 권태가 오던가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언론사 경영자로 지내니 젊은 나이에도 어딜 가나 대접받았고 안정되고 편했어요. 예전에 월 스트리트에서 일할 때 55조원짜리 인수합병 팀에 선발됐을 때 상사가 격려해주려고 저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때 '지금 이것을 던지지 못하면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상사 앞에 앉자마자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왜 꼭 던져야 합니까?
"저는 나라, 사회, 공직, 국가, 세계, 역사, 이런 것들을 지향합니다. 서른여덟에 편하게 살자는 결정을 내리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세하면서 "나는 이념가도 선동가도 아니고 성취가이자 경영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안 던지면 못 던진다'는 식으로 조바심을 내는 건 '성취 중독증'인가요?
"성취 중독이라기보다는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거지요. 회사 다니면서 적절한 성과를 내봤고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도 해봤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거기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다른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자기를 던져본 일이 있습니까?
"진정한 희생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나의 입신양명과 영달을 위해서만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변명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늘 제 운명의 주재자로 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억대 연봉을 받는 회사원보다는 구멍가게를 해도 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본 적 있습니까?
"아, 봉사 활동이요? 그건 많이 했어요."
―하버드 입학 지원서에 쓰기 위한 봉사 활동 말고 진짜 봉사 활동 말입니다.
"글쎄요. 이기적으로 살진 않았어요.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을 함께 업그레이드시켜 왔어요. 그것이 리더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조직원을 같이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말입니다."
―홍정욱이 자기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프로라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공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란 증거가 될 만한 경력이 없다는 거지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성취와 봉사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저 자신의 성취를 통해 다른 사람을 함께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역 현안과 교육, 경제 문제에서 가장 실천적인 실행을 통해 우리 지역구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건 선거유세용 발언이고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홍정욱을 업그레이드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국회의원 몇 년 하다가 권태로워져서 또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만 업그레이드한다고요? 국회의원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저는 작긴 해도 언론사의 사주였어요. 국회의원이 누리는 것 중에 언론사 사주가 누리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를 시작했어요.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을 버리고 힘든 검증의 세계에 들어왔어요. 제가 4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 달고 저만 업그레이드시키고 끝날 것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일을 해서 승부를 내겠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추구합니까?
"점점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정치를 오래 하긴 할 건가요?
"여기저기 쿡쿡 찔러보다 정치를 한 게 아니고 인생의 한 단계를 완성하고 정치를 한 겁니다. 정치와 공직 참여가 제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군 복무도 하고 언론사 경영도 했던 건가요?
"인간에게 그 정도의 치밀함이 가능할까요? 군대는 미국서 벤처 하다가 망하고 나서 돈도 없고 오갈 데 없어서 귀국해 부모님 집에 얹혀살다가 갔어요. 그렇게 딱딱 시기를 맞춰 사업도 망해주고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그렇게 치밀하면 아내의 귀화나 아이들 이중 국적 문제는 왜 나왔겠어요? 미리미리 준비를 했겠지요. 오죽하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에서 왜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요."
총선을 앞두고 그에게 약점이 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2004년 헤럴드 미디어 노조로부터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됐던 일, 아버지 남궁원씨의 다단계 판매업체 사기사건 관련설, 미국 국적인 부인 손정희씨의 귀화신청, 자녀들의 이중국적 등이었다. 홍 당선자는 "나와 아버지 문제는 깨끗이 해결됐고 다른 문제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불법도 편법도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가자고 결심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도 군복무 시점은 좀 찜찜해요. 어머니 환갑이 지난 시점이라 6개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좀 찜찜하지요. 그래서 어디 가서 군복무 했다는 이야기 잘 안 합니다."
―재산 신고한 게 8억원 좀 넘던데 왜 이렇게 적어요?
"제가 자본금 5억원짜리 법인을 세워 그 회사를 통해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TV를 인수를 했기 때문에 선관위에 신고할 때는 5억원만 한 겁니다. 선관위에 여러 번 문의했는데 제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주식만 신고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 TV의 실제 제 지분에 대해서도 기록을 해서 제출했습니다."
―국회에도 한나라당에도 층층시하의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묵묵히 따를 겁니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튈 생각입니까.
"안 그래도 튀는데, 튀겠다는 마음까지 먹으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사는 방식대로 하면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도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선을 택해서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실용주의란 원칙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때 그때 실용적인 길을 찾는 거니까. 케네디 행정부가 그 요란함에 비해 내세울 업적이 별로 없는 건 실용주의 때문이란 지적도 많아요.
"케네디는 이미지뿐이었지만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웬 덩샤오핑 이야기인가 싶다. 그를 미국 동부의 사립고와 하버드로 이끌었던 케네디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열을 내며 칭송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체했다.
―케네디가 역할모델 아니었어요?
"대학교 가서 케네디의 실체를 알고 나선 그렇지 않아요. 케네디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기보다는 이미지뿐이지요. 물론 케네디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요. 그건 멋있어요. 가장 엘리트적인 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줬으니까요."
―지금은 누가 롤 모델입니까?
"이젠 그런 게 필요한 때는 아니지요. 벤치마킹을 하는 건 홀로서기가 힘들어서입니다. 저도 한때는 케네디와 테드 터너 전 CNN 사장 등을 벤치마킹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벤치마킹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지요?
"헤럴드 미디어가 흑자 전환을 한 순간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추구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기업을 흑자 전환 시킨 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학교 다니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봤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도 받아봤습니다. 그러나 벤처사업을 하면서 도산했기 때문에 한 기업을 돈 버는 기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압니다. 그래서 흑자 내는 기업을 만드는 데 모든 걸 걸었어요."
―흑자 내기로 치자면 다른 기업이 더 쉬웠을 텐데 왜 하필 언론사를 선택했습니까?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끌릴 수 있는 기업이어야 했습니다. 라면 봉지 만드는 기업도 고려했어요. 그 회사를 경영하면 돈은 엄청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필이 안 꽂혔어요. 반면 언론기업을 보는 순간엔 이거다 싶어서 숫자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담배 피워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담배를 피우는 건 어쩐지 홍정욱답지 않은데요?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술 먹고 취해서 노래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게 뭔지 잘 몰라요. 치열하게 살다보니 낙을 많이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담배는 피워요."
―외모 덕을 많이 봤지요?
"아니라면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고, 그렇다고 하면 실체적인 오만인데, 이길 수 없는 질문이네요. 주변에서 그랬다고들 해요."
―조기 유학생 부모들이 홍 당선자의 진로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조기유학 갔다가 돌아온 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제가 선봉을 치고 나가줘서 고맙다고 해요. 자신들도 대한민국을 위해 편견 없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는 거지요."
―인생의 절정이 언제였어요?
"아니, 어떻게 절정이 벌써 옵니까? 은퇴해서 시골로 가 그림 그릴 때가 절정이겠지요."
―그림을 그려요?
"예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범인의 두뇌로 어떻게 추구할 수가 없었어요. 거기엔 단계적으로 지향할 목표가 없거든요. 저는 예술가와 과학자가 세상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은 스스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2중대에 불과해요."
―언론계에서 정치로 옮겼으니 이러나저러나 2중대 체질이네요.
"그래서 예술가에게 열등감이 있어요."
―또 어떤 열등감이 있나요?
"육체적인 열등감도 있어요. 아버지보다 키가 작거든요.(웃음)"
그의 아버지는 키가 180cm인데 홍 당선자는 177cm이다.
―성격이 내성적이라면서요?
"낯을 많이 가려요. 저보고 연설과 강의를 잘한다고 하는데, 기립박수 받을 수 있는 강의를 한 시간 하려면 10시간 정도 암기하고 연습을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있어서 못하는 것은 하기 싫어해요. 그래서 골프를 안 칩니다. 도전할 만한 게 아니다 생각되면 안 하는 식이거든요."
―선거에서 지면 무엇을 하려고 했어요?
"선거를 마치고 보니 아름다운 패배라고 할 만한 패배는 없더군요. 승리만이 자신의 지지자와 이상을 위한 최상의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덜 아름다운 거예요."
―누군들 좋아할까마는, 지는 거 너무나 싫어하지요?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안티'가 생길 텐데…. 사실은 져본 적이 없어요."
―벤처 하다 망해 먹었고, 중국 유학 갔다가 중도 포기 한 건 진 게 아닌가요?
"그건 스스로 잘 합리화했어요. 벤처 망하고 나선 실패도 경험해야 하는데 이 정도로 체험하게 된 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중국 유학을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정말 최선을 다했나' 하는 후회는 있어요."
―독자들이 홍 당선자를 인터뷰한 이 기사에 대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잘 읽힐 겁니다. 본의든 아니든 저는 호, 불호를 야기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서죠.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겠지요. 싫건 좋건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어떤 기사가 나가든 사람들이 저에 대해 갖는 견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좋은 이미지든 나쁜 이미지든 그걸 깨려면 글보다 오랜 실천과 행동이 따라야 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홍 당선자의 아버지 남궁원씨가 밖에 있었다. 대낮부터 술을 한잔 했는지 불그레한 얼굴이었다. 아들 유학비 대느라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국음식점을 했다는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4·9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접전을 벌이다가 43.1%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헤럴드 미디어 회장으로 일하다가 지난 2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초우트로즈마리홀 고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진학해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다.
하버드 졸업 후에 쓴 '7막7장'은 1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하버드대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고 베이징대에서 1년간 수학한 후 미국으로 가 스탠퍼드 법과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금융가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후 귀국했다. 재즈를 좋아해 '카멜롯서울'이란 재즈클럽을 열었던 경험도 있다. 부인 손정희씨와의 사이에 1남2녀.
지난 15일, 4.9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노회찬 후보와 접전 끝에 승리한 홍정욱 당선자를 만났다.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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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책을 읽고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다.
나는 언론인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청년이다.
나는 국회의원을 신뢰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다시 그를 기억 해 냈다.
그리고 그리고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힘을 내서 4년을 보내 달라고 외치고 싶다.
그 어떤 말말말 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사람은 타인의 말을 하긴 쉽다. 자신의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취와 도전을 이뤄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것만으로도 족하다.
당신이 돌아온 의미 말이다.
강인선 Live 하버드 졸업… 언론사 회장, 그리고 국회 진출 홍정욱이 말하는 '나의 인생'
4·9 총선 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홍정욱 (38) 전 헤럴드 미디어 회장은 좀 꼬질꼬질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살도 빠진 듯했다. 선거 사무실은 어수선하고 어설펐다. 선거 20일 전 전략공천이란 명분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서울 노원 병)에 투입돼 후닥닥 선거를 치른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 홍정욱 당선자의 아버지인 영화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씨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너는 민족과 인류에 기여하는 참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다. / 사진=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 서울 노원구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홍정욱 당선자는 "아직 마흔 살이 안 된 사람이니 실패도 굴곡도 모를 것이라고들 하지만 나이에 비하면 많은 일을 겪었다"고 했다.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홍정욱은 '조기유학, 강남, 하버드, 명문, 성공'을 상징했다. 그에 대해 중립적인 사람은 드물었다. 아주 좋다거나 너무 싫다고 했다. 그가 총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에 바로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와 '결국 국회의원 하자는 것이었나'였다. 총선 일주일 후 유리창에 시퍼런 비닐종이를 발라 가까스로 햇볕을 가린 사무실에서 홍 당선자와 마주 앉았다.
―선거를 해보니 어떻던가요?
"힘들었어요. 네거티브 선거전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상대방이 만든 '귀족 대(對) 서민'의 구도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어요. 승리한 후에도 일부 언론은 이 결과를 저의 승리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당선된 것을 이 지역 주민의 선택이 아니라 진보의 몰락으로 보더라고요. 피도 눈물도 없는 실용주의적 귀족주의의 승리라고 하더군요. 감당하기 벅찬 분석과 반응이지요."
―주변에서 " 홍정욱 이 무얼 했다고 국회의원이 됐느냐"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왜 그럴까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당선 확정 후 제가 환호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마치 '성공하기 위한 기계' 같은 모습이었어요. 선거에 나간 사람 치고 '승리를 확신한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도 제가 그 말을 하면 확신이 줄줄 배어 나와요. 그걸 보면 사람들이 '저놈이 한번 거꾸러지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사실은 저도 떨었고 괴로워했어요."
―'빠다 냄새'도 거부감의 중요한 이유인 것 같던데요.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해요. 생긴 게 그렇다는 건가요? 말투가? 사고가 서구적이란 거예요? 아니면 느끼하다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요."
―전부 다 포함된 뜻일 겁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거야 미국서 17년을 살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여자들에게 느끼하게 치근덕거린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뜻이 아니고, 미국 사람 같다는 거지요. '7막7장'에서 유학시절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려고 너무 애썼던 이야기 같은 걸 보면 좀 불편해지거든요.
"그때 저에겐 그게 중요했어요. 미국 사립학교란 닫힌 공간에서 동양 아이들은 끼워주지도 않았어요. 미국서 공부 다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미국의 교육뿐 아니라 전통과 관습까지도 다 익혀서 주류로 살다 떠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어요."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이용해주겠다'는 태도가 얄밉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7막7장'은 스물세 살 때 썼어요. 사람들이 스물세 살 때 자신이 쓴 일기장을 한번 들춰 봤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에 가장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쓴 책이니까 지금 보면 당연히 유치하지요."
―책이야 그렇다 치고, 요즘도 홍정욱이 말하는 건 어쩐지 다 꾸며낸 이야기 같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걸 계산해서 말하는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7막7장'이란 책 제목 때문인 것 같아요. 인생을 그렇게 7단계로 나눠 한 단계씩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지요. 거기서 7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완벽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제목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이지 단계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 되겠다'고 했지요. 그건 '그냥 일 잘하는 정치인'을 넘어서겠다는 뜻이지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매일 그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국민들이 희망과 긍정을 느낍니까? 희망을 심어주는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리더십은 비전에서 시작해 성과로 끝납니다."
―2003년에 했던 한 인터뷰를 보니, 언론·출판·교육 사업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던데, 그것 역시 정치인으로 가는 발판에 불과했던 것인가요?
"그건 진짜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미디어 경영자로서 앞으로 30년 정도 더 일하면 언론계에 한 축을 세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걸 다 던질까 말까를 두고 6개월 정도 고민했어요."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뭡니까?
"작년에 회사가 안정되면서 경영에 대한 권태를 느꼈습니다."
―언론사 경영 5~6년 하고 나니까 권태가 오던가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언론사 경영자로 지내니 젊은 나이에도 어딜 가나 대접받았고 안정되고 편했어요. 예전에 월 스트리트에서 일할 때 55조원짜리 인수합병 팀에 선발됐을 때 상사가 격려해주려고 저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때 '지금 이것을 던지지 못하면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상사 앞에 앉자마자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왜 꼭 던져야 합니까?
"저는 나라, 사회, 공직, 국가, 세계, 역사, 이런 것들을 지향합니다. 서른여덟에 편하게 살자는 결정을 내리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세하면서 "나는 이념가도 선동가도 아니고 성취가이자 경영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안 던지면 못 던진다'는 식으로 조바심을 내는 건 '성취 중독증'인가요?
"성취 중독이라기보다는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거지요. 회사 다니면서 적절한 성과를 내봤고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도 해봤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거기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자기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다른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자기를 던져본 일이 있습니까?
"진정한 희생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나의 입신양명과 영달을 위해서만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변명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늘 제 운명의 주재자로 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억대 연봉을 받는 회사원보다는 구멍가게를 해도 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본 적 있습니까?
"아, 봉사 활동이요? 그건 많이 했어요."
―하버드 입학 지원서에 쓰기 위한 봉사 활동 말고 진짜 봉사 활동 말입니다.
"글쎄요. 이기적으로 살진 않았어요.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을 함께 업그레이드시켜 왔어요. 그것이 리더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조직원을 같이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말입니다."
―홍정욱이 자기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프로라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공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란 증거가 될 만한 경력이 없다는 거지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성취와 봉사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저 자신의 성취를 통해 다른 사람을 함께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역 현안과 교육, 경제 문제에서 가장 실천적인 실행을 통해 우리 지역구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건 선거유세용 발언이고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홍정욱을 업그레이드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국회의원 몇 년 하다가 권태로워져서 또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만 업그레이드한다고요? 국회의원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저는 작긴 해도 언론사의 사주였어요. 국회의원이 누리는 것 중에 언론사 사주가 누리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를 시작했어요.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을 버리고 힘든 검증의 세계에 들어왔어요. 제가 4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 달고 저만 업그레이드시키고 끝날 것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일을 해서 승부를 내겠습니다."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추구합니까?
"점점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정치를 오래 하긴 할 건가요?
"여기저기 쿡쿡 찔러보다 정치를 한 게 아니고 인생의 한 단계를 완성하고 정치를 한 겁니다. 정치와 공직 참여가 제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군 복무도 하고 언론사 경영도 했던 건가요?
"인간에게 그 정도의 치밀함이 가능할까요? 군대는 미국서 벤처 하다가 망하고 나서 돈도 없고 오갈 데 없어서 귀국해 부모님 집에 얹혀살다가 갔어요. 그렇게 딱딱 시기를 맞춰 사업도 망해주고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그렇게 치밀하면 아내의 귀화나 아이들 이중 국적 문제는 왜 나왔겠어요? 미리미리 준비를 했겠지요. 오죽하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에서 왜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요."
총선을 앞두고 그에게 약점이 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2004년 헤럴드 미디어 노조로부터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됐던 일, 아버지 남궁원씨의 다단계 판매업체 사기사건 관련설, 미국 국적인 부인 손정희씨의 귀화신청, 자녀들의 이중국적 등이었다. 홍 당선자는 "나와 아버지 문제는 깨끗이 해결됐고 다른 문제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불법도 편법도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가자고 결심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도 군복무 시점은 좀 찜찜해요. 어머니 환갑이 지난 시점이라 6개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좀 찜찜하지요. 그래서 어디 가서 군복무 했다는 이야기 잘 안 합니다."
―재산 신고한 게 8억원 좀 넘던데 왜 이렇게 적어요?
"제가 자본금 5억원짜리 법인을 세워 그 회사를 통해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TV를 인수를 했기 때문에 선관위에 신고할 때는 5억원만 한 겁니다. 선관위에 여러 번 문의했는데 제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주식만 신고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 TV의 실제 제 지분에 대해서도 기록을 해서 제출했습니다."
―국회에도 한나라당에도 층층시하의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묵묵히 따를 겁니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튈 생각입니까.
"안 그래도 튀는데, 튀겠다는 마음까지 먹으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사는 방식대로 하면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도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선을 택해서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실용주의란 원칙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때 그때 실용적인 길을 찾는 거니까. 케네디 행정부가 그 요란함에 비해 내세울 업적이 별로 없는 건 실용주의 때문이란 지적도 많아요.
"케네디는 이미지뿐이었지만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웬 덩샤오핑 이야기인가 싶다. 그를 미국 동부의 사립고와 하버드로 이끌었던 케네디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열을 내며 칭송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체했다.
―케네디가 역할모델 아니었어요?
"대학교 가서 케네디의 실체를 알고 나선 그렇지 않아요. 케네디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기보다는 이미지뿐이지요. 물론 케네디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요. 그건 멋있어요. 가장 엘리트적인 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줬으니까요."
―지금은 누가 롤 모델입니까?
"이젠 그런 게 필요한 때는 아니지요. 벤치마킹을 하는 건 홀로서기가 힘들어서입니다. 저도 한때는 케네디와 테드 터너 전 CNN 사장 등을 벤치마킹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벤치마킹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지요?
"헤럴드 미디어가 흑자 전환을 한 순간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추구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기업을 흑자 전환 시킨 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학교 다니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봤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도 받아봤습니다. 그러나 벤처사업을 하면서 도산했기 때문에 한 기업을 돈 버는 기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압니다. 그래서 흑자 내는 기업을 만드는 데 모든 걸 걸었어요."
―흑자 내기로 치자면 다른 기업이 더 쉬웠을 텐데 왜 하필 언론사를 선택했습니까?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끌릴 수 있는 기업이어야 했습니다. 라면 봉지 만드는 기업도 고려했어요. 그 회사를 경영하면 돈은 엄청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필이 안 꽂혔어요. 반면 언론기업을 보는 순간엔 이거다 싶어서 숫자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담배 피워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담배를 피우는 건 어쩐지 홍정욱답지 않은데요?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술 먹고 취해서 노래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게 뭔지 잘 몰라요. 치열하게 살다보니 낙을 많이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담배는 피워요."
―외모 덕을 많이 봤지요?
"아니라면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고, 그렇다고 하면 실체적인 오만인데, 이길 수 없는 질문이네요. 주변에서 그랬다고들 해요."
―조기 유학생 부모들이 홍 당선자의 진로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조기유학 갔다가 돌아온 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제가 선봉을 치고 나가줘서 고맙다고 해요. 자신들도 대한민국을 위해 편견 없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는 거지요."
―인생의 절정이 언제였어요?
"아니, 어떻게 절정이 벌써 옵니까? 은퇴해서 시골로 가 그림 그릴 때가 절정이겠지요."
―그림을 그려요?
"예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범인의 두뇌로 어떻게 추구할 수가 없었어요. 거기엔 단계적으로 지향할 목표가 없거든요. 저는 예술가와 과학자가 세상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은 스스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2중대에 불과해요."
―언론계에서 정치로 옮겼으니 이러나저러나 2중대 체질이네요.
"그래서 예술가에게 열등감이 있어요."
―또 어떤 열등감이 있나요?
"육체적인 열등감도 있어요. 아버지보다 키가 작거든요.(웃음)"
그의 아버지는 키가 180cm인데 홍 당선자는 177cm이다.
―성격이 내성적이라면서요?
"낯을 많이 가려요. 저보고 연설과 강의를 잘한다고 하는데, 기립박수 받을 수 있는 강의를 한 시간 하려면 10시간 정도 암기하고 연습을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있어서 못하는 것은 하기 싫어해요. 그래서 골프를 안 칩니다. 도전할 만한 게 아니다 생각되면 안 하는 식이거든요."
―선거에서 지면 무엇을 하려고 했어요?
"선거를 마치고 보니 아름다운 패배라고 할 만한 패배는 없더군요. 승리만이 자신의 지지자와 이상을 위한 최상의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덜 아름다운 거예요."
―누군들 좋아할까마는, 지는 거 너무나 싫어하지요?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안티'가 생길 텐데…. 사실은 져본 적이 없어요."
―벤처 하다 망해 먹었고, 중국 유학 갔다가 중도 포기 한 건 진 게 아닌가요?
"그건 스스로 잘 합리화했어요. 벤처 망하고 나선 실패도 경험해야 하는데 이 정도로 체험하게 된 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중국 유학을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정말 최선을 다했나' 하는 후회는 있어요."
―독자들이 홍 당선자를 인터뷰한 이 기사에 대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잘 읽힐 겁니다. 본의든 아니든 저는 호, 불호를 야기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서죠.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겠지요. 싫건 좋건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어떤 기사가 나가든 사람들이 저에 대해 갖는 견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좋은 이미지든 나쁜 이미지든 그걸 깨려면 글보다 오랜 실천과 행동이 따라야 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홍 당선자의 아버지 남궁원씨가 밖에 있었다. 대낮부터 술을 한잔 했는지 불그레한 얼굴이었다. 아들 유학비 대느라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국음식점을 했다는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4·9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접전을 벌이다가 43.1%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헤럴드 미디어 회장으로 일하다가 지난 2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초우트로즈마리홀 고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진학해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다.
하버드 졸업 후에 쓴 '7막7장'은 1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하버드대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고 베이징대에서 1년간 수학한 후 미국으로 가 스탠퍼드 법과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금융가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후 귀국했다. 재즈를 좋아해 '카멜롯서울'이란 재즈클럽을 열었던 경험도 있다. 부인 손정희씨와의 사이에 1남2녀.
나는 그의 책을 읽고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다.
나는 언론인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청년이다.
나는 국회의원을 신뢰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다시 그를 기억 해 냈다.
그리고 그리고 내 꿈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힘을 내서 4년을 보내 달라고 외치고 싶다.
그 어떤 말말말 에도 굴하지 않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사람은 타인의 말을 하긴 쉽다. 자신의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취와 도전을 이뤄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 것만으로도 족하다.
당신이 돌아온 의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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