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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動(impression)

<스크랩>런던올림픽 - 8강 런던의 두 골키퍼

by 쭈야해피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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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두 골키퍼 

0-12 수모당한 한국 축구, 64년 만의 대반전
[중앙일보]입력 2012.08.06 02:09 / 수정 2012.08.06 06:55

런던의 두 골키퍼, 64년 만의 대반전
올림픽 축구 첫 4강 신화 쓴 2012년 이범영, 그 뒤엔 축구화도 손수 고쳐야 했던 1948년 홍덕영 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축구 대표팀 골키퍼 홍덕영이 망치로 축구화를 수선하고 있다(왼쪽). 2012년 영국과의 8강전에서 이범영은 승부차기를 막아내 승리를 이끌었다. [사진=스포츠 자료 수집가 이재형씨,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기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5일(한국시간)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 영국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막아내 승리를 이끈 골키퍼 이범영(23·부산 아이파크)의 늠름한 모습이다. 또 하나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팀 골키퍼 홍덕영이 숙소 앞에 쭈그리고 앉아 망치로 축구화를 직접 수선하는 모습이다. 두 장의 사진은 64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두 개의 대한민국을 극적으로 대비해 보여준다.

 2012년 한국이 8강에서 상대한 영국 팀은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우승을 목표로 나선 ‘축구 종가’ 대표였다.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은 영국 선수들과 축구팬들은 한국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 선수들은 완벽하게 경기를 지배했고, 자신 있게 승부차기에 나섰다.

 이범영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영국 팬들의 온갖 야유에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 키커를 향해 씩 웃어줄 만큼 여유가 넘쳤다. 1m95㎝·94㎏ 건장한 체격의 이범영이 팔을 쫙 벌리자 골문이 좁아보였다. 승부차기 4-4에서 대니얼 스터리지(23·첼시)의 슈팅은 몸을 날린 이범영의 손에 걸렸다. 한국은 마지막 키커 기성용(23·셀틱)이 골을 성공시켜 5-4 승리를 거뒀다. 한국 올림픽 축구 사상 첫 4강 진출의 드라마가 완성됐다. 외신은 ‘축구 종주국’ 영국을 그들의 안방에서 완벽하게 제압한 한국팀의 용기와 실력에 찬사를 보냈다. 2012년 대한민국은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64년 전인 1948년 런던에 왔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렇지 못했다. 정부 수립 이전이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특별 허가를 얻어 겨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열차-배-비행기를 옮겨 타며 9개국을 전전한 끝에 무려 18일 만에 런던에 닿았다. 그들은 경기도 하기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1948년 8월 5일(현지시간), 스물두 살의 골키퍼 홍덕영(1926~2005)은 런던 올림픽 남자축구 8강전에 나섰다.

상대는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호 스웨덴. 상대 공격수들이 퍼붓는 48개의 슈팅이 그의 몸을 맞거나 골망을 흔들었다. 1m73㎝·66㎏의 홍덕영은 당시 한국인으로서는 큰 체구였지만 스웨덴 선수 앞에서는 왜소하기만 했다. 스웨덴에 0-12로 참패한 한국은 조롱의 대상이었다.

 고(故) 홍덕영 선생을 생전에 만나 이 사진을 받고 날짜와 장소를 확인한 이재형(51·스포츠자료 수집가)씨에게 홍 선생은 “우리 선수들은 공을 뺏기면 또 슈팅을 허용하게 되니 아예 공을 밖으로 차 버리기도 했다. 그날 비가 왔는데 흙 묻은 공이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바람에 온몸에 성한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진에는 이유형·안종수·오경환 등 당시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의 사인이 남겨져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은 대한항공 전세기로 13시간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과학적 훈련과 영양 공급을 받는 우리 선수들은 이제 어느 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범영은 훤칠한 몸매와 잘 생긴 얼굴로 단숨에 인기 스타가 됐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내친김에 우승까지 넘보고 있다.

 64년 전, 대포알 같은 상대 슈팅 수십 개를 온몸으로 막아낸 홍덕영 골키퍼와 축구 선수들이 있었다. 선배들의 땀과 눈물이 쌓여 한국 축구는 ‘올림픽 4강’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리게 되었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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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본날 신문을 집에 들고 왔다. 스크랩 해 두려고...

신문사에 다니면 좋은 점이 있다. 매일매일 신문을 읽게 된다는 것.

어른들이 왜 신문 좀 읽어라 읽어라 했는지 알게 되었다. 다시금...

예전에는 '뭐 인터넷에 기사가 다 있는데요 뭘~ ' 했겠지만,

지금은,,, 전체 지면을 읽다보면, 내가 관심 없었던 부분에서도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다.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도 알게 되고,,,

한국에 돌아가면 종이신문을 받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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