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talking book & contents)

[퓰리처상 수상]니클의 소년들_혐오의 시대에 갇힌 우리들에게

쭈야해피 2021. 4. 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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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리처상 100년 역사상 이례적인 두 번의 수상! 2017 수상작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에 이어 미국 고전으로 기록될 놀랍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니클의 소년들

 

 2019년에 발표해 2020년에 퓰리처상과 오웰상을 수상한 콜슨 화이트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이 이렇게나 빨리 번역되어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담긴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허구이며, 등장인물은 모두 나의 상상이다. ... ... 도지어 남학교의 생존자들이 만든 웹사이트 'theofficialwhitehouseboys.org'에 가면 옛날에 이 학교를 경험한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경험담을 읽을 수 있다. 나는 4장에서 화이트하우스 소년 잭 타운즐리의 이야기를 인용했다.
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말을 많이 인용했다. 그의 목소리를 머릿속으로 듣고 있으면 기운이 난다. 엘우드가 인용한 킹 목사의 연설은 '학교 통합을 위한 청년 행진을 앞둔 연설'(1952년) 1962년에 LP로 나온 <자이언 힐의 마킨 루서 킹> 중 특히 '편타운'부분, '버밍햄 감옥에서 쓴 편지', 1962년에 코넬 칼리지에서 한 연설 등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대적으로 기사화 되었을 충격적인 사건. 작가는 이 이야기를 잘 써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 같습니다. 수도 없는 사전 취재와 인터뷰들, 설득과 이해, 질문과 고심들이 오고 갔겠지요. 어떤 실화보다, 더 세심한 자료 수집과 그 사이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상상들, 글쓰기와 수정 작업이 거듭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에, 작가의 말 제일 처음 문장처럼 마냥 상상 속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끝도 없는 생각과 질문이 제 안에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참 고마운 소설이었습니다.

 

 

1962년 엘우드는 평생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습니다. <자이언 힐의 마틴 루서 킹>, 마틴 루서 킹의 연설이 담긴 앨범. 그가 가진 유일한 앨범이었고 단 한 번도 턴테이블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자신에게 와 닿는 한 문장이...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요. 그것이 옳다 그르다의 기준도 사람은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이므로, 매일 삶의 여로를 걸을 때 이런 품위와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레코드판이 계속 돌고 돌았다. 항상 난공불락의 전제로 되돌아오는 놀이 같았다. 킹 목사의 말이 좁은 직사각형 모양의 집 앞쪽에 있는 거실을 가득 채웠다. 엘우드는 하나의 원칙에 마음이 기울었다. 킹 목사가 그 원칙에 형태와 소리와 의미를 주었다. 짐 크로처럼 검둥이들을 계속 누르려고 하는 거대한 힘이 있고, 엘우드 너를 계속 누르려고 하는 작은 힘이 있다. 이를테면 주위의 다른 사람들. 이런 크고 작은 힘 앞에서 너는 꼿꼿이 일어서 너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백과사전은 안이 비어 있었다. 미소를 지으며 너를 속여 텅 빈 것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네게서 너의 자존감을 빼앗아가는 사람도 있다. 너는 자신이 누구인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야기의 서론에서는 '누구 못지 않게 착한 엘우드'의 평범한 일상과 그의 꿈과 희망, 똑똑하고 성실함, 학교 선생님의 지원과 응원, 그리고 흑인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 분위기, 몽고메리 사건과 그 시절 변화와 움직임에 대해 독자로 하여금 소망과 기대감을 움트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끝내 아주 사소한 행동, 아주 작은 선택이 불러온 참담한 현실 속으로 '엘우드'를 끄집고 들어갑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현실, 끝이 있을 것 같지만 잘 보이지 않는 그곳 '니클 아카데미'로 밀어 쳐 넣습니다.     


 이 책을 선택하고, 읽고, 돌아보고, 감상문을 쓰기까지 많은 생각들과, 말들과, 사회현상들이 머릿속을 수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 읽었던 홍성수의 《말이 칼이 될 때》가 떠올랐습니다. 혐오표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변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책이었는데, 그때 당시에(2018년) 차별과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의식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치밀하게 혐오가 우리를 휩쓸고 있으며, 누군가는 그것을 이용하고, 선동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이 칼이 될 때

 

말이 칼이 될 때 – Daum 검색

Daum 검색에서 말이 칼이 될 때에 대한 최신정보를 찾아보세요.

search.daum.net

 

 

 2021년 오늘을 살면서, 먼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Black Lives Matter', 'Stop Asian Hate' 운동을 목도하고 있으며, 미얀마 군부의 만행을 통해 40년 전 우리의 군부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차별과 혐오, 이기주의를 선동하는 이들이 생각 없이(혹은 계산되어) 내뱉은 단어와 문장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습니다. 조용히 지내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데 까지 차츰차츰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범죄, 슬픔이 쌓여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변화의 바람이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 줄 거라고 믿으며, 희망과 소망을 기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사소한 선택을 했을 뿐인 한 소년과 소녀의 삶이 '니클의 소년들'이나 '형제복지원의 소년들'처럼, 그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밀어 쳐 넣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소름이 끼쳐 옵니다. '에이~ 지금은 그때랑 다르잖아.'라고 하기에는 그 시절의 차별과 혐오가, 오늘의 차별과 혐오와 너무도 닮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pg. 29

탤러해시로 출장 온 말쑥한 회사원이나 관광을 하러 온 화려한 부인이 좋은 냄새가 나는 요리를 즐기게 되겠지. 엘우드는 확신했다. 그가 이 게임을 시작한 것은 아홉 살 때였는데, 3년이 흐른 뒤에도 홀에서 보이는 유색인종은 접시와 술잔을 들고 가는 사람이나 대걸레질을 하는 사람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결코 게임을 그만두지 않았다. 리치먼드에서 오후를 보내는 나날이 끝날 때까지. 이 게임에서 그가 이기려고 했던 상대가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는지 아니면 고집스럽고 한결같은 세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pg. 33

프렌치타운에서 벌어지는 검둥이들의 투쟁, 흑인 동네가 끝나고 백인의 법이 적용되기 시작하는 지점에 대해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라이프>의 사진 에세이는 그를 전선으로, 배턴루지의 버스 보이콧 현장으로, 그린즈버러의 연좌 농성장으로 데려다주었다. 엘우드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청년들이 그곳에서 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그들은 철봉으로 얻어맞기도 하고, 소방 호스에서 나오는 물줄기를 맞기도 하고, 성난 얼굴의 백인 가정주부들이 뱉은 침을 맞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숭고한 저항 중에 카메라에 잡힌 모습 그대로 정지화면이 되어 있었다.

 

pg. 42

그러고 나서 검은 마커를 나눠주며, 교과서에 적힌 나쁜 말들을 모두 지우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다. "그런 걸 보면 나는 항상 열이 오르거든. 너희는 교육을 받으려고 여기 와 있는 것이니, 그 멍청이들이 하는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 엘우드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굼뜨게 움직였다. 그들은 교과서를 한 번 보고 선생님을 한 번 보았다. 그러고는 마커로 작업을 시작했다. 엘우드는 기분이 붕붕 들떴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런 엉뚱한 짓을 하다니. 왜 지금껏 아무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은 거지?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지워." 힐 선생님이 말했다. "백인 애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잖아." 학생들이 욕설과 악담을 지우는 동안 선생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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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 69

니클의 인쇄소에서는 세금 규정에서부터 건축 규정과 주차위반 딱지에 이르기까지 플로리다 주 정부의 모든 인쇄물을 찍어냈다. "그렇게 큰 주문을 실행하고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는 거다. 이런 지식은 앞으로 평생 동안 써먹을 수 있어."

 

pg. 72

엘우드는 원래 잘 우는 편이 아니었지만, 경찰에 체포된 뒤로는 달라졌다. 니클에서 어떤 일을 겪을지 밤에 상상하다 보면 눈물이 나왔다. 할머니가 옆방에서 흐느끼며 무엇을 어찌할 줄을 몰라 물건들을 열고 닫으며 수선을 피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도, 자신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형편없는 길로 빠져버렸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을 때도 눈물이 나왔다. 

 

pg. 92

가죽 채찍은 벌 받은 학생의 다리를 향해 내려오기 전에 먼저 천장을 찰싹 때렸다. 마치 이제 곧 그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알리려는 듯이. 채찍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매트리스의 스프링이 삐걱거렸다. 엘우드는 침대에 단단히 매달려 베개를 악물었지만, 매질이 끝나기 전에 기절했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이 그에게 몇 대나 맞았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수 없었다.

 

pg. 109

 "여기서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잘 보고 생각해봐. 널 여기서 꺼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너밖에는." 

... ... 그는 이미 사라져 버린 할머니의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할머니와 아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지금 이 순간만은 할머니 앞에 앉아 있었다. 면회 날 그는 할머니에게 잘 지내고 있지만 슬프다고, 힘들지만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이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짓을 했어요, 할머니. 이런 짓을 했다고요." 

 

pg. 135

터너는 지금껏 엘우드 같은 녀석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머리에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는 '굳건하다'였다. 탤러해시 출신인 엘우드는 착하고 무른 모범생처럼 굴면서 짜증 나게 자꾸 설교를 하려고 드는데도 그렇게 보였다. 녀석이 쓰고 있는 안경을 발로 밟아 나비처럼 짓이겨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엘우드는 백인 대학생 같은 말투를 썼고, 꼭 읽지 않아도 되는 책들을 읽어 자기만의 원자폭탄에 쓸 우라늄을 캐냈다. 그래도 여전히 굳건해 보였다.

 

pg. 162

이스마엘은 배터리처럼 폭력성을 차곡차곡 저장해서 은근히 무서운 남자였다. 터너는 그때부터 이런 남자들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 메이비스는 이스마엘을 생각하며 환한 얼굴로 뮤지컬 영화의 노래들을 흥얼거리곤 했다. 잡음이 많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어놓고 화장실에 틀어박혀 뜨거운 빗으로 머리를 손질할 때도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음정이 잘 맞지 않았다. 언젠가 이모가 2주 내내 선글라스를 쓴 이유가 무엇인지, 가끔 정오가 지날 때까지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며 절룩절룩 밖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인지 터너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스마엘의 주먹 앞에서 터너가 제 몸으로 이모를 가리고 섰던 다음 날 이스마엘은 그를 데리고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 ... 그리고 그때부터 어른들은 나쁜 짓을 한 뒤 그걸 잊게 만들려고 항상 아이들에게 뇌물을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g. 184

어떤 아이들은 니클에서 도망쳐 다른 곳에서 다른 이름으로 그림자처럼 살아갔다.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니클이 자기를 잡으러 올 날을 두려워하면서. 하지만 탈출을 시도한 아이들은 대부분 붙잡혀서 아이스크림 공장을 한 번 맛본 뒤 품행 교정을 위해 2주 정도 어두운 감방에 갇혔다. 도망치는 것도 미친 짓이고 도망치지 않는 것도 미친 짓이었다. 

 

pg. 216

'우리를 감옥에 가둬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우리 집에 폭탄을 던지고 우리 아이들을 위협해도,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두건을 쓰고 폭력을 저지르는 자들을 한밤중에 우리 동네로 보내 우리를 길가로 끌어내서 때려 반죽음으로 만들게 해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우리는 고통을 견디는 능력으로 당신들을 지치게 해서 언젠가 자유를 얻어낼 겁니다.'

고통을 견디는 능력. 엘우드를 포함해서 니클의 아이들은 모두 이 능력과 함께 살아갔다. 이 능력 속에서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꿈을 꾸었다. 그것이 지금 그들의 삶이었다.

 

pg. 226

이렇게 정의의 메커니즘이 움직이게 된 것은 버스에서 앉으면 안 되는 자리에 앉은 여자, 금지된 식당에 들어가 호밀빵에 햄을 얹은 샌드위치를 주문한 남자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증거를 담은 편지가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매일 삶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에게 이런 긍지가 없다면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pg. 237

아무 이유 없이 꽃을 사주는 게 평범한 남편의 행동인가? 그 학교를 나온 뒤 이렇게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는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관습을 암호처럼 해석하는 데 하루 중 일부를 바쳤다. 행복한 가정에서 하루에 세 끼를 꼬박꼬박 먹고 밤에는 잘 자라는 키스를 받은 사람들, 화이트하우스나 강제 데이트나 지옥행 선고를 내린 백인 판사 같은 것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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